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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인간 사슬』이 시작시인선으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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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2. 12. 1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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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작은 구원; 최규리 시인의 시적 제안

 

 

하종기 기자

 

 

2016시와세계로 등단한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던 최규리 시인인 두 번째 시집 인간 사슬(천년의시작, 2022)을 발간했다.

 

해설을 쓴 박성준 문학평론가는 앞서 상재한 최규리 시인의 첫 시집 질문은 나를 위반한다잘 구축된 세계의 질서를 위반하려는 부정의 시학에서부터 출발한다면 이번 시집 인간 사슬은 시원의 회귀와 지금 여기의 구원을 전망하면서. 흩어지고 절단된 세계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기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 예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연안 3개 공화국 주민 200만 명이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린 600의 거대한 인간 사슬의 띠를 통해 소련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자유를 갈구하는 염원이 담긴 비폭력 투쟁이자 축제였던 사건을 들었는데, “인간이 저 자신의 손을 사용해 자행한 폭력을 다시 생명성의 원천으로 복권하겠다는 결의로 최규리 시인의 시선을 읽어 냈다. 또한 이 세계에 온기의 발생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무엇이든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이 시집엔 에 대한 최규리 시인만의 시선도 담겨 있다. 시인은 인간 탄생의 과정을 에서부터 찾았다. 물론 여기서 표상되는 은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놀던 아기가 넘어졌다 일어설 때 땅을 딛는 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네발로 기어 다니던 유인원이 앞발을 손으로 사용하면서 인류는 진화를 거쳤고, 직립이 시작되었으며 그렇게 인간 사회의 관계-질서가 형성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봤다. 그러나 인간의 손이 좌절을 딛고 일어서거나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았던 것.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손과 손이 결합할때마다 우리는 사회화 과정을 겪어 왔으며, 자본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회사 출입문을 해제”)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손으로 뺨을 얻어맞으며”) 문명을 얻기도 하였다고 했다.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손의 폭력성도 보았는데, 서로의 이권과 이해관계에 따라 살육도 마다하지 않는 전쟁의 세계(“땅따먹기 놀이에 빠진 세계”)로 추락하게 된 인간들의 손을 상생이 아니라 비윤리를 세속화하는 도구로 인식했다.

그밖에 시집 인간 사슬을 읽는 매력적인 코드는 몇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이 궁금한 분들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 시집 속 시 맛보기>

 

:행능력

 

최규리

 

구름의 모양에 시달려 달라지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해변을 걷는다

가장자리가 된다는 건 가장 자리가 멀다는 것

 

연인들이 한 손을 잡고 한 손에는 불신을 들고

소확행을 타고

견디면 안 되는 것처럼

 

지나왔던 길은 그만하고 싶었던 길

 

신체는 하나씩 잘려 나갔지

감정 소모가 클수록 작아지는 몸

중심에서 벗어나면 싹둑싹둑 잘렸다

 

나를 소비하지 않겠어요

 

다짐했던 마음은 새우깡 한 조각처럼 쉽게 던져지고

 

빗나가면 죽을 것 같은 시절도 지났으니 이제 참지 말라고 밀려오는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가 살아졌다가 물벼락을 맞으며 물보라를 일으키네

 

날개를 접고 따뜻하게 데워진 에어프라이어에 엎드려 점점 익어가도 좋겠다

 

바다에서 바닥을 쓸어내리며 목격하지 않은 것처럼 목적을 향해 혹은 공복의 상태에서 공부의 상태는 되지 않는 것처럼 떠밀렸던 파도가 다시 돌아와도 가장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약속하지 못했지 야속했던 시속으로 날아야 했던

지나친 허기와

뼛속까지 텅 빈 바람이 지나쳐 가기를

 

귀를 자르고 붕대로 감고 노란 선언을 하지 않기로

초능력 조나단이 되지 않기로

갈매기의 꿈은 물려받은 유전자와 세습인지 몰라

 

날지 않는 용기와

움직이지 않는 당당함을 보여줬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낯선 나를 향해

 

발바닥을 배에 붙이고

 

당분간 몸을 소비하지 않겠어요

 

― 『인간 사슬, 천년의시작, 2022.

 

 

 

단 하나의 세포였을 때로

 

최규리

 

물에 뛰어든다 어떤 맥락도 없이

 

물에 속성을 따른다 뼈대를 거슬러 퇴화한 꼬리뼈의 연대기 속으로 깊은 숲속에 집을 짓는 자유인처럼 훌쩍 떠나고 훌쩍 나타나는 삐딱한 기울기처럼

 

늑대의 울음을 만드는 달빛이

 

사실은 전설이 되고 싶어서 그대 안의 블루가 되어 굽힐 줄 모르는 심해에서 물결의 마음도 그러했을 거라고 믿고 싶기에

 

불행했던 기억은 없었는데 왠지 억울해져 울컥거림을 따돌리는 방법인지도, 꿈 밖으로 벗어나면 큰일 나는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머리카락이 일렁인다

직진이던 관절의 관성을 멈추려고

젤리피쉬를 따라

투명하고 말랑한 빛을 따라

 

머리카락은 마음껏 펼쳤다가 몸을 감싸 안는다 캄캄했던 이불 속으로 숨 막혔던 옷장 속으로 옷의 진동이 스케치북을 매일 백지로 만들었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엄마와 옷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과 젤리향이 났던 지우개와

 

늘 바다를 기다렸다 바다는 오지 않았으나 바람이 그치지 않았고 입을 옷이 없다는 엄마와 옷을 그리며 바다로 뛰어드는 백지들이 옷이 되고 무늬가 되는 펄럭이는 날들 속에서

 

투명하고 말랑한 젤리가 자랐다

 

잠은 잠적하기 좋은 방

머리카락은 나를 묶기 좋은 잠

 

탯줄을 목에 감고 자궁벽을 찢으며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던 때로 수정란을 부수고 당신의 꼬리를 잘라 나팔관을 거슬러 착 달라붙는 애착 인형이 필요하지 않았던 깊은 잠 속으로

 

날아오르는 물이 되어 투명하고 말랑한 단 하나의 세포였을 때로

 

― 『인간 사슬, 천년의시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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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인간 사슬』이 시작시인선으로 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 2016년 『시와세계』로 등단한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던 최규리 시인인 두 번째 시집 『인간 사슬』(천년의시작, 2022)을 발간했다. 해설을 쓴 박성준 문학평론가는 앞서 상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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