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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서 시인의 첫 시집 『잘 자라는 쓸쓸한 한마디』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2. 12. 2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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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대한 완벽한 미적 고백

 

하종기 기자

 

신윤서 시인은 2012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시부문을 수상하고, 2013실천문학에서 주관한 오장환신인문학상 수상하며 이미 재야의 검증을 받은 시인이다. 오장환신인문학상의 심사를 맡았던 송찬호·최금진 시인은 심사평에서 신인으로서 지녀야 할 도전정신과 참신성, ‘재치가치로 바꿀 줄 아는 능력, 그리고 투고작들의 한결같은 완성도를 높이 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시적 재능은 등단 10년 만에 출간하는 첫 시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천년대 이후 등장한 대부분의 신인들은 아주 낯설고 때론 고통스런 감각을 내세워 시적 파장을 최대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 신윤서 시인은 그런 흐름에서 한발 벗어나 당신과 나의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에 몰두하고 있다. 예술과 욕망, 사랑의 조화를 통해 빚어내는 삶의 찬란한 순간을 시로 만들어낸다. 시인의 영혼과 감수성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사랑의 비망록이다. 그녀의 시는 성적 욕망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표현한다. 자신의 시를 통해서 예술과 욕망과 사랑이 충실한 세계를 형상화할 줄 아는 시인이다.

 

발랄한 상상력과 개성 넘치는 비유는 우리의 삶과 정열을 더욱 생생하게 펼쳐 보여준다.

휘핑크림 바케트 딸기요플레」 「라일락은 라일락이므로 문밖에서 서성이고」 「빙하기」 「안녕 사과 씨등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그의 관능적 어법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이 개성적 문법으로 욕망과 번민을 직조해낸 시인은 사랑의 아픔과 상처를 통해, 사랑이 아름다운 시대로의 회귀를 꿈꾸듯 시를 펼친다.

 

시의 흐름을 너무 가볍거나 무겁게 방치하지 않는다. 감정의 호흡을 가다듬어 시적 흐름을 안정적으로 통제하면서 사랑에 임하는 감정 역시 과장하거나 가장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근원적 욕망을 충실하게 형상화하면서 자신만의 시적 매력을 강화하고, 드디어는 자기 삶의 행복을 완성시킨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관능의 어법 또한 눈길을 끈다. 관능이란 현대사회의 욕망을 포함한 본질적 사랑을 위하여 드러낸 강렬한 몸짓이다. 그런 관능조차 미학적으로 끌어올린 것이 신윤서의 시가 갖는 또 다른 매력이다.

 

<시집 속 작품 맛보기>

 

 

휘핑크림 바게트 딸기요플레

 

신윤서

 

딱딱한 당신은 단단한

문장. 탄탄한 자음과모음의 행간을

넘나들다 엎질러진 물

깨진 유리 파편이 되어 펑펑

울고 있을 때,

암막 커튼 치고 문 걸어 잠그고 햇볕은 그저

꽝꽝 언 얼음 위나 내달렸습니다.

입술에 잔뜩 묻은 거품을 핥는

혓바닥. 혀와 혀는 서로 엉킨 실타래 같다.

스르르 풀리는 스카프 같다.

단추를 끄르다말고 묻는다.

프렌치 키스를 좋아하나요.

당신이 하모니카 깊은 목젖까지 휘저으며

재즈를 연주할 때, 우리의 우주는,

우리의 어깨는, 우리의 입술은

뭉개지고 비틀리고 늘여졌다 다시 찢기고

뜯기고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게 팽팽해집니다.

딸기요플레처럼 나는 축축해요.

새콤하고 달콤해요. 단단하고

탄탄하고 딱딱한 당신.

날카로운 활자들을 귓속에 쏟아 부으면 나는

아득히 멀어집니다.

까마득히 사라지거나 잊혀 집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이것을

우리는 정체불명의 결핍이라 부릅시다.

행간과 행간을 건너다니는 애증. 혹은

증오라 부릅시다. 그것도

틀렸다면 시공 밖으로 날아간 돌멩이.

이마를 깨트리고 달아나는 무서운 침묵.

수신 거부. 영구 삭제. 차단 해제가 불가한

휘핑크림 바게트 딸기요플레라

정의합시다.

 

잘 자라는 쓸쓸한 한마디, 시인의 일요일, 2022.

안녕 사과씨

 

신윤서

 

사과를 깎아본 적이 있겠지요? 둥근 웃음 둥글게 깎아내다 보면 칼을 쥔 손은 항상 오른손 엄지를 향하지만 그래도 두려움 없이 둥글게 사과를 밀어 올리는 것을 보면 말이죠. 그러니까 사과와 나는 눈이 맞아서, 바람이 나서 그런 게 아닐까요? ㅋㅋㅋ. 안녕! 사과씨. 지금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바람이 나서, 당신과 내가 그러니까 송두리째 당신 여자가 되고 싶어서, 당신 둘레를 맴돌고 있는 게 아닌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연결되고 싶어서 속살 아삭거리는 당신의 붉은 옷자락을 벗겨내는 중 아닐까요. 과도의 예리한 날이 엄지의 지문을 스쳤지만 괜찮아요. 선연한 핏방울의 맛이랑 당신을 한 입 깨문 맛은 어딘지 비슷하니까요. 그러니까 칼날이 지나간 사과와 내 피의 맛은 혼연일체라 생각되는 것이죠. 안녕! 사과씨. 둥근 웃음 둥글게 내 명치에 파문 져 올 때, 당신 웃음이 내 심장에 아프게 꽂혀 들 때, 나는 당신을 다 삼키고 당신의 씨방 속으로 숨어들고 싶어요. 조그만 씨방 속 아주 작게 패인 동굴 안에 숟가락 두 개뿐인 살림을 차리고 당신 닮은 아이를 하나 낳고 싶어요. 소행성 같은 당신 곁을 떠나지 않고 오래오래 자전하는 나는 당신과 눈이 맞아서, 바람이 나서 날선 과도 앞에서도 꿋꿋한, 내 사랑을 밀어올리고 있는 걸 거예요.

 

잘 자라는 쓸쓸한 한마디, 시인의 일요일,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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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서 시인의 첫 시집 『잘 자라는 쓸쓸한 한마디』 발간 - 미디어 시in

신윤서 시인은 2012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시부문을 수상하고, 2013년 《실천문학》에서 주관한 오장환신인문학상 수상하며 이미 재야의 검증을 받은 시인이다. 오장환신인문학상의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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