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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연재 작가 김보람 시인, 시집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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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1. 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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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고 현대적이고 미학적인 시조의 방향성

 

 

하린 기자

 

2008<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보람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을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펴냈다.

김보람 시인은 등단 당시 김제현 시인(경기대 명예교수)으로부터 역대 수상자보다 젊고 순진무구하며 패기 넘치는 시인이 나온 것은 시조단의 일대 사건”(중앙신인문학상 시상식 기사)이라고 했고, 심사평에서는 유연한 상상력과 풋풋한 서정”(심사평)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후 김보람은 첫 번째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고요아침, 2017)에서 실험적이면서도 낯선 언어 감각으로 시조의 현대적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두 번째 시집 괜히 그린 얼굴(발견, 2019)에서 불안의 흔적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를 드러내며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의지를 드러냈다. 세 번째 시집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에서는 안과 밖을 바라보는 경계인의 시선으로 내성적인 시적 주체를 등장시켜 견딤의 시학을 펼쳐 보인다.

시인은 시집 속에서 하루 지나 반백년/ 오늘 가장/ 먼 사람”(이를테면 모르는 사람)을 부르며 세상 모든 가깝고 먼 존재를 호명한다. “당신을 알았다고 착각하는 잠시 동안/ 내가 나를 영영 모를 것 같은 기분”(타인의 방)을 가진 화자를 통해 우리의 오늘이 늘 이별의 편”(아마도 홀로)에 서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반씩 섞여 걷는 거리”(덧붙임)를 느끼고, “약속을/ 잊은 약속처럼/ 잃은 사람의 이름처럼”(얼음 강을 건너는 심경) “달려오면서 갱신되는 슬픔”(깊이와 기울기)을 견디고 있는 것도 직관한다.

오래되었다// 그래도 슬펐고/ 그래서 슬펐다//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마다”(시인의 말)라는 시인의 독백에서 알 수 있듯 우리들이 처한 관계론적 자리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도 미학적으로 제시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의 부록”(물의 부록)과 같은 관계성은 한 시절 사랑하다 지는 풍경”(감추는 사람과 감은 눈)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김보람은 허무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시는 끝과 끝을 모르는 사람”(당신은 뭍을 나는 바다를 바라본다)한 개의 바통과 아흔아홉 개의 결말”(온실에서 자라나는 건강하고 안전한 말)을 만드는 일이라고 여기며 창작의 오롯한 자세만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삶의 국면이 끝없이/ 바깥으로 밀려도”(끝줄로부터 무한하게) 포기할 수 없는 생의 기쁨이 도처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김보람 시조는 젊다. 매우 현대적이며 미학적이다. 21세 시조의 새로운 지점을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한다.

 

 

 

 

 

<시집 속 시조 맛보기>

 

 

얼음 강을 건너는 심경

 

김보람

 

초조가 진화하면 얼음이 됩니다

 

표백된 감정이

강 위로 쌓이는 날

 

약속을

잊은 약속처럼

잃은 사람의 이름처럼

 

겨울을 이해할 때까지 얼음은 두꺼워집니다

 

차가움은 모호하고

깨끗함은 위험하니

 

안에도 바깥이 생겨 비대해진 슬픔

 

내용 없는 바람이 맥락을 끊습니다

 

눈은 계속 날리고

발자국은 차오르고

 

누구도 편애할 수 없는 냉실 속에 있습니다

―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시인동네, 2022.

 

 

 

00

 

 

김보람

 

 

영영 너머 영영이 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을 때 한 가지 기후만 응시하고 싶었다

 

한 줌 눈

백지 한가운데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법

 

영영 영영 영영영영 영영영 영영 영

 

추락하는 영원

깨어나는 영원

 

천국은 내가 쓰려고 한

시의 마지막

단어

―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시인동네, 2022.

 

 

깊이와 기울기

 

 

김보람

 

 

1

망치를 향해 무너지는 어깨의 각도에서

벼락 맞은 나무의 자세만 남는다면

 

가파른 행간의 방향은 우연한 것일까

 

2

바람의 앞니가

파문의 중심이다

 

어떤 반쪽은 달려오면서 갱신되는 슬픔들

 

사랑한 사람이 있었고,

 

지워버린

사람이 있다

―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시인동네, 2022.

 

 

태어나는 계절

 

 

김보람

 

 

비밀은 숨길 수 없어서 비밀이 되었다

 

이것은 길에서 시작된 꽃에 대한 생각

 

당신은 한 방향으로만 가는 눈과 귀를 가졌다

 

기울기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소란(소란)

 

따르겠습니다,라는 말은 공중의 비문이다

 

눈물은 적이 없는 넋

본 적 없어

아름답고

―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시인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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