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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영 첫 시집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 더푸른시인선 1번으로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1. 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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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과 작품성, 미학성이 동시에 확보되어 있는 특별한 시집

 

하린 기자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는 더푸른 출판사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더푸른시인선첫 번째 시집이다. 20% 인세 지급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공모를 했는데,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김숙영 시인은 2019열린시학신인작품상으로 등단한 이후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해오다 채낚기2021년 제15회 바다문학상 대상을, 2022별지화로 제1회 천태문학상 대상을, 8회 전국 계간 문예지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등단과 더불어 이렇게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신인은 흔하지 않다.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는 김숙영 시인의 첫 시집으로서 그동안의 성취나 성과물들이 압축되어 있는 작품집이다. 김숙영의 시는 진정성과 작품성, 미학성이 동시에 확보되어 있는 것들이 많다. 시의 결의 진지하고, 결에 나타난 자신만의 목소리와 메시지가 분명하며, 그것을 풀어내는 일련의 방식이 미학적이다.

그런 시적 능력은 김숙영 시인이 수상한 세 개의 문학상 심사평에서 검증된 바가 있다. 8회 계간지우수작품상 심사평에서는 수상작 프레임소요(逍遙)에 대해 발상은 신선했고 언술은 친근했으며 구조는 탄탄했다. 읽는 이에게 공감과 실감, 밀도를 선사해주는 묘한 매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15회 바다문학상(대상) 심사평에서는 김숙영 시인의 채낚기에 대해 미끼 없는 낚시를 하는 아버지의 일상에서 바다와 사람 관계의 확장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 아버지가 낚아 올린 것이 물고기만은 아닌 듯하다고 내비침으로써, 생의 의미로까지 내용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선명하고 따뜻한 작품입니다.”라고 평했다. 그리고 제1회 천태문학상(대상) 심사평에서는 별지화가 단연 눈에 띄었다. 별지화는 사찰 당우에 그려지는 단청에서 화조, 산수, 인물, 동물 등을 회화적 수법으로 그린 단독 문양을 말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거기 그려진 연꽃을 매개로 자아가 본래면목과 만나는 과정을 탄탄한 구성과 감각적 표현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몸속이 화심(花心)으로 가득 찬 기분/ 꽃의 마음이란/ 식물성 부처를 만나는 일이었을까 절 쪽만 바라봐도/ 날개를 편 단청이 꿈속으로 날아 왔다는 끝부분에서 보여주고 있는, ‘식물성 부처라는 전혀 새로운 표현과 불이 (不二)와 원음에 이르렀을 때 자연스레 번져 나오는 환희심을 결구로써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 돋보였다.”라고 평했다.

시집 구성은 4부로 나누어져 있다. 1카오스에서는 주로 자연물 소재를 바탕으로 인간의 삶의 깃든 생의 비의와 존재론적인 의미를 다루고 있는데, 문학상 수상작인 별지화, 채낚기, 소요(逍遙)가 앞쪽에 배치되어 있어서 시집을 읽는 맛을 먼저 돋우고 있다.

2나만 아는 판도라 상자에서는 주로 화자와 타자 사이에 형성된 관계론적인 물음과 내밀한 감정의 결을 다루고 있는데, 파국적 상황이든 이별의 후경으로 남은 상황이든지 간에 감각적인 묘사와 직관적인 진술을 활용해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3나비효과에서는 다양한 외부 요인으로 형성된 화자의 내면적 정황이 주로 나타나 있다. 운명에 순응하면서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화자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국면을 진단하고 파헤쳐나가려는 적극적인 화자가 발화의 주체가 되어 등장하는데, 그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다.

4왼손의 비밀에서는 시인이 특별하게 창출한 어린 화자가 자신의 트라우마적인 상황을 감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상황에 깃든 이미지와 메시지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김숙영 시인의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공감할 만한 모티브와 소재로 다가가 마음속 깊이 감각적인 문양을 남길 것이다. 특히 비극적인 상황이어도 주체적으로 그 상황을 직관하고 극복해나가려는 의지가 있는(또는 의지를 갖고 싶은)독자들에게 위로와 카타르시스를 무한히 선사하게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별지화(別枝畵)

 

김숙영

 

처마 밑 연꽃이 천년을 산다

진흙 물결도 없는데

한 번 돋아나면 오직 적멸을 향해 움직인다

그러니 꽃은 피고 지는 게 아니라

화려함 뒤에 숨어

나무의 숨결과 함께

천천히 조금씩 흩어지고 있는 거다

처음엔 그저 썩지 않게

다스리는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틈 하나 없이

나무를 껴안고 놓지 않는다

이것은 밀봉이 아니라 밀착

()이 공()을 향해 걸어가려는 의지

봉황의 춤이 허공중에 스민다

바람이 색을 민다

풍경 소리가 찰방찰방 헤엄친다

지붕 아래 꽃들이 소리 나는 쪽을 본다

색과 색이 만나 서로의 색을 탐독한다

꽃의 안쪽을 볼 수 있는 안목이 될 때까지

나는 화두 밑을 걷고 또 걷는다

머리 위에 꽃의 말이 내려앉는다

대웅전 안쪽 문수보살이

아무도 모르게 웃을 것만 같다

몸속이 화심(花心)으로 가득 찬 기분

꽃의 마음이란

식물성 부처를 만나는 일이었을까

절 쪽만 바라봐도

날개를 편 단청이 꿈속으로 날아왔다

―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 더푸른출판사, 2023.

 

 

당신은 무슨 색 거짓말을 좋아하나요

 

김숙영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다고 믿는 당신

흰색을 좋아하면서 왜 붉은색을 내밀고 있나요

 

당신이 깜짝 놀라도록

이젠 초록색을 줄게요

 

본색보다 매력적인 붉은 색을

이젠 눈동자 속에 심어봐요

 

은밀한 것으로부터 뿌리가 뻗고

하루 만에 이중적인 줄기가 자랄 거예요

 

따로 물을 줄 필요는 없어요

 

오래된 벽화에 채색된 입술이 갈라진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진실들이

천천히 와해 되고 말 거에요

 

명랑한 태도가 수많은 기억을 깨우겠죠

오늘만 사는 당신은 또 다른 색을 찾겠지만

이젠 틈이 없어요

 

숨 막히게 다정한 척을 해도

하루 만에 퇴화한다는 걸 알아야 해요

퇴화조차 또 다른 이중성이니까

 

그때 흘린 눈물을 참회라고 부르지 말아요

뻔한 본색의 결과는 이미 당신 안에 있으니

 

이젠 눈으로만 말해요

그 눈빛으로만 나도 대답할게요

―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 더푸른출판사, 2023.

 

 

 

차별

 

김숙영

 

거울이 자꾸 나를 차별해요

외면하기 쉽지 않은데

속마음까지 반사되는 것 같은데

금이 가길 바라는 내 눈동자가 너무 많아요

거실은 항상 내게 결핍을 제공해요

청소기는 왜 일주일째

나를 따라다니지 않나요

개수대에 쌓여있는 그릇들이

친절하게 악취를 풍기고

달력은 모든 기념일을 기념하지 않아요

소파는 안락한 불안을 엉덩이에게 슬쩍 내밀죠

TV는 몰입성이 좋고

일방적이고 적극적인 디지털 방식을 고수해요

공기 정화 식물에게 나의 적막을 말하면

악몽까지 정화시켜 줄까요

이중 커튼이 닫히는 순간 1인극이 시작되죠

커튼은 열릴 때가 행복할까요

닫힐 때가 행복할까요

독방 속 잔여물처럼 남겨진

나는 단막극에 너무나 가까운데요

시계의 맥박이 매 순간 일정해서 두려워요

어둠의 숨소리와 겹쳐

동그라미를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요

거실은 오로지 나에게 의존하고

거울은 이제 차별조차 하지 않아요

―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 더푸른출판사, 2023.

 

 

 

연필의 노래

 

김숙영

 

의미 없이 만지지 마세요

난 흑심을 가지고 있어요

본 대로 말하는 것보다

안 본 것까지 이야기하는 방식을 좋아해요

알리바이를 꾸밀까요

몽타주를 내밀까요

낮의 초현실주의나

밤의 상징주의를 이젠 뛰어넘고 싶어요

처음부터 나는 쓱쓱과 싹싹을 품었어요

빨리 백지를 주세요

예상하지 못한 문장을 천천히 적어 내려갈 테니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술술 자백을 뽑아낼 테니

 

당신은 언제나 주인공만 하세요

멋진 프롤로그를 가지고 있는 스타가 되세요

악역은 전부 내가 할래요

나쁜 건 내가 다 뒤집어쓸래요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다그치진 말아요

욱하는 순간 부러질지 몰라요

육하원칙을 지키면서

본질만을 제시할지 몰라요

어젯밤 당신은 독주를 앞에 두고 일탈을 꿈꿨지요

나의 용도를 바꾸려고 마음먹었지요

그런 뻔한 유언은 사양할래요

너무나 끔찍한 사실주의 같잖아요

그러니 내가 닳아져 없어질 때까지

무조건 뒤틀린 당신을 쓰고 또 쓰세요

―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 더푸른출판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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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영 첫 시집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 더푸른시인선 1번으로 발간 - 미디어

하종기 기자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는 더푸른 출판사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더푸른시인선’ 첫 번째 시집이다. 20% 인세 지급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공모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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