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간이 흘러도 한결같이 ‘젊은 시’를 쓰는 시인의 특별한 시선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6. 3. 17. 02:05

본문

이화은의 여섯 번째 시집 누가 나를 없다고 한다, 서정시학시인선으로 발간

 

 

 

하린 기자

 

우리 시단에는 나이가 들어도 한결같이 젊은 감각으로 시를 쓰는 여성 시인이 여러 명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화은 시인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만의 뛰어난 직관력을 발휘하여 대상의 본질을 포착한 후 세련된 언어 운용으로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여섯 번째 시집 누가 나를 없다고 한다(서정시학, 2026)에서도 그러한 시적 경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숭원 평론가도 추천사를 통해 이화은 시인은 삶의 빛나는 표면보다 그 안에 담겨 잘 보이지 않는 그늘에 관심을 보인다. 세상을 사는 일이 외롭고 쓰라리지만, 그는 비탄의 외침도 저항의 탄성도 토로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이화은 시인의 신간 시집 발간을 기념하여 <미디어 시in>에서는 미니 인터뷰를 신청했다.

 

-

 

질문: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여섯 번째 시집을 발간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답변: 등단 35년 만에 여섯 번째 시집을 발간했습니다. 다른 때 보다 그 텀이 조금 빨랐단 느낌입니다. 작품 정리를 하다 편수가 찼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또 주변에서 인삿말로 시집 안내냐는 소리에 그만 덜컥 냈다고 하면 말이 될까요. 누군가 제 시집을 읽고 드디어 힘이 빠졌다고 하더군요. 수영도 힘이 빠져야 물에 뜰 수 있다구요. 개헤엄을 35년간 치다가 겨우 물에 뜬 느낌이라고 하면 건방진 말인가요. 힘이 빠졌다는 말은 물에게 항복했다는 말이 되기도 하겠네요. 물에게 반항하지 않고 뻗대지 않고 그저 물결에 순응한다는 말이겠죠. 제가 시에게 항복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시에게 아무리 저항해봐도 시는 늘 제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죠. 시는 제게 우군이기도 하고 적군이기도 했습니다. 다정하게 위로를 주기도 하지만 우울과 절망을 주기도 했구요. 요즘은 시의 인질이 된 느낌입니다. 아름다운 인질이라고 미화하면 독자들께 야단 맞겠지요? 다른 시집에 비해서 공감을 받았다는 연락이 많이 와서 마음이 훈훈하기도하지만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 며칠 가지 않는다는 걸요. ‘한 사람의 독자도 내게는 많다라고 첫 시집에서 건방을 떨었는데 그 말을 다시 되새기고 있습니다.

 

-

 

질문: 다섯 번째 시집과 여섯 번째 시집 사이 변화 양상이 있나요? 있다면 변화 양상을 말씀해 주시고, 없다면 지속적인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답변: 다섯 번째 시집까지는 시를 쓴다고 썼고 이번 시집은 제 삶을 쓴 것 같아요. 어느 시집이나 삶이 빠진 시집이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세월에 떠밀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서럽고 쓸쓸한 기운으로 살고 쓰고 했다고 할까요. 시인 독자들이 제 시를 슬프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 제 삶 속으로 슬픔이 끼어들었나 봐요. 아니 슬픔이 저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슬픔은 도둑 같아요.

 

-

 

질문: 매번 발간하는 시집마다 늘 깨어있는 시 정신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시적 대상을 어떤 태도로 포착하고 포착한 것을 어떤 식으로 사유하나요?

 

답변: 요즘 시가 안 된다고 하소연했더니 어떤 시인이 그러더군요. 우연에 기대라구요. 다시 말하면 시가 오지 않았는데 쥐어짜도 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죠. 산문은 쥐어짜면 문장이 되지만 시는 아무리 협박해도 시가 되지 않지요. 그래도 아주 놓아버리면 또 안 되는게 시 아닐까요. 가만히 두되 낚싯대는 드리우고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놀고먹는 것 같은 강태공의 철학이라고 할까요. 놀고먹지만 맘 편하게 놀고먹을 수는 없는 게 시인의 운명 같아요

 

-

 

질문: 시집 속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작품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답변: 집에 가자입니다. 다른 시들이 섭섭해할까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 시인이나 다 특별하겠지만 저도 그렇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지 30년이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더 짙어지는 게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죠. 써놓고 혼자 울었던 시입니다.

 

-

 

질문: 이 시집을 통해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특별한 주제나 주제 의식이 있나요?

 

답변: 그런 거창한 거 없어요. 다만 독자가 공감해주고 잠깐이나마 쉬어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

 

질문: 시를 쓰는 일 말고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나 취미 활동이 있나요?

 

답변: 멍때리기입니다. 한 곳에 사십 년 가까이 살다 보니 집이 몸 같아요. 집과 어울려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가장 좋습니다.

 

-

 

질문: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시집으로 읽게 될 독자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계획은 없습니다. 시가 저를 버리지 말기를! 이번 시집이 마지막 시집이 될지도 모른다고 입방정을 떨었는데, 제발 시가 그 소리를 듣지 말았기를! 우연히 이 시집 속에서 제 시와 만나는 독자가 계시다면 우연을 필연 또는 운명이라고 바꾸고 싶어요. 그런 독자가 계시다면 시의 행간에 앉아 잠시, 함께 쉬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칼을 든 여자

 

이화은

 

무를 잘랐는데

속이 없다

무 속에 무가 없다

 

복잡하다

 

뭇국을 끓여야 하는데

물은 끓고 있는데

 

도마 앞에 아득히 서 있는

나는 칼을 든 여자

 

썩은 무를 두 번 자를 이유가 없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여자

 

썩었다와 속았다 사이에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생각만으로는 뭇국을 끓일 수 없는데

 

무는 썩었고 물은 끓고

습관처럼 저녁은 오고 있는데

 

나는 다만 칼을 든 아득한 여자

―『누가 나를 없다고 한다, 서정시학, 2026.

 

-

 

집에 가자

 

이화은

 

우는 아이에게 집에 가자고 하면 뚝 울음을 그친다

집은 울지 않아도 되는 곳인 줄 아이는 알았을까

 

전학해 온 지 한 달 된 학교

앞에 놓은 시험지는 깜깜하고 깊었다

심해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빈 시험지 위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선생님이

그래 눈물만 한 답은 없지

 

내시는 아직도 눈물만 한 답을 얻지 못해 헤매고 또 헤맨다

 

객짓밥이 유난히 시린 날은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이 말을 두텁게 덥고 잠들곤 했다

 

신접살림 집에 딸을 두고 돌아서며 어머니는 몇 번이나

이제는 여기가 네 집이다 못을 박았다

그래도 나는 자주 집에 가고 싶었다

우는 아이 손을 잡고 집에 가자 달래면서도

나도 내 집에 가고 싶었다

 

어머니 돌아가실 즈음

혼미한 중에도 입술만 가만가만 집에 가자 하신다

우리들의 집이었던 어머니도 집에 가고 싶으셨구나

 

켜켜히 쌓인 한 생의 울음을 뚝! 그치게 해 줄 그런 집

 

어머니 돌아가신 지 삼십 년

제사를 거둔다는 전갈이 왔다

어머니 이제 가고 싶은 집에 닿으신 거다

―『누가 나를 없다고 한다, 서정시학, 2026.

 

-

 

춘분

 

이화은

 

감색 반바지에 빨간 티셔츠의 여자를 찾습니다

지적 장애가 있습니다

 

지하철 안내 방송이 나오자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 나를 쳐다본다

빨간 티셔츠에 나는 검정색 바지인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는데

 

덩달아 나도 우르르 나를 살펴본다

그러고 보니 왠지 낯설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것 같다

 

어디서 실종 되었을까

 

요즘 내 기억은 절반이 뭉뚱 사라지고 없다

반신불수

 

사람도 사랑도 추억도 치욕도

폭설에 지워진 지도처럼 새하얗다

내가 잃어버린 기억들은 어디서 나를 찾고 있는지

 

다음 역에 내리면 빨간 티셔츠에 감색 반바지를 입은 내 기억이

서 있을 것 같은데 덥석 만날 것 같은데

 

우리는 바지만 바꿔 입고 또 다시 철길을 달려가며

잃어버린 절반을 찾아 끝없이 안내 방송을 할 것 같은데

―『누가 나를 없다고 한다, 서정시학, 2026.

 

 

시간이 흘러도 한결같이 ‘젊은 시’를 쓰는 시인의 특별한 시선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시간이 흘러도 한결같이 ‘젊은 시’를 쓰는 시인의 특별한 시선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우리 시단에는 나이가 들어도 한결같이 젊은 감각으로 시를 쓰는 여성 시인이 여러 명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화은 시인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만의 뛰어난 직관력을 발휘하여 대

www.msiin.co.kr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