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린 기자
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원석이 두 번째 시집 『밤의 공항』을 타이피스트 시인선으로 출간했다. 첫 시집 『엔딩과 랜딩』(문학동네, 2022)이 끝과 도착 사이의 감각을 탐색하며 가능성의 언어를 더듬어 갔다면, 이번 시집은 그 이후의 세계 즉, 더 이상 도착이 의미를 갖지 못하는 자리에서 발현된 감각과 감정을 탐색한다. 폐쇄된 공항과 반복되는 순찰, 끝없이 이어지는 밤의 구조 속에서 시인은 떠나지 못한 채 남겨진 존재의 상태를 실체적 형상을 통해 구축한다.
이 세계에서 이동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이미 지나간 것을 되밟는 반복에 가깝고, 감정은 직접 드러나기보다 사물의 질감과 구조로 번역된다. 사랑과 죽음은 구분되지 않는 무게로 겹쳐지며, 시는 그 감정을 정서가 아니라 물리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한다. 『밤의 공항』은 상실을 말하기보다, 상실 이후에도 세계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존재의 방식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떠난 이후에도 계속되는 밤 속에서, 이 시집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감각을 붙든 채 그 지속의 시간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공항이라는 특별한 공간은 여전히 이동을 전제하고 있지만, 밤의 공항은 오히려 그 반대의 상태를 오래 붙들고 있는 장소로 바뀐다. 그럴 때 공항은 떠나기 위한 곳이 아니라, 떠나지 못한 감각들이 머무는 자리로 남고, 시인은 ‘순찰’이라는 반복을 통해 무너진 세계를 붙잡는 기회를 얻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와 문, 인식 장치와 폐쇄 구역, 기록과 점검의 형식은 이 공간을 하나의 시스템처럼 만들고, 거기에서 비롯된 화자의 감정은 독특한 존재 방식을 포착하게 만든다.
그 예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들 수 있다. 이원석에게 사랑과 죽음은 서로 다른 감정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가라앉는 두 개의 힘이다. 그는 감정을 직접 말하기보다, 그것을 사물의 질감으로 바꾸는 창작 방식을 택하는데, 선반의 재질, 쇠막대의 규격, 철제 강관과 유리병 같은 물질의 언어를 통해 감정의 무게를 구성한다. 사물은 이미지의 보고이므로, 사물로 대변되는 감정의 실체화는 이원석 시의 중요한 특장점으로 작용한다.
『밤의 공항』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또 하나의 부분은 노동과 비인간화에 대한 시인의 시선이다. 컨테이너, 회로, 톱니, 부품, 산성비, 녹아내리는 동료들. 이원석은 사회적 파손을 신체의 결함으로, 노동의 착취를 감정의 작동 불량으로 번역한다. 그럼에도 그는 구호를 반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고통을 시스템의 언어로 바꾸며, 인간과 기계, 관계와 기능이 뒤섞인 상태를 드러낸다.
『밤의 공항』은 시인의 경험 맥락과 시적 상상이 버무려진 매력적인 시집이다. 경험 맥락이 중심축이 되어 본질성과 근원성을 탐구하는 기반을 마련했고, 시적 상상이 미학적 확장을 도모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게 현실 언어와 상상 언어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밤의 공항』은 공항에 대한 장소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 의미 있는 시집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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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쇠막대의 규격
이원석
물에 가라앉는 것이 필요해
손에 쥘 수 있는 마음 같은 것
쇠로 만든 막대 같은 것
두드리면 울리고 손에서 놓으면 가라앉는 것
내려다보면 일렁이는 바다
바닥을 바라고 가라앉기 위해
파도를 버리고 내려가는 위안
무거움을 얻고 싶다
아래로 아주 깊이 가라앉고 싶지만
이 세계에 무거운 것은 두 가지
죽음과 사랑뿐이다
출렁이는 정의도 일어서는 함성도
때 없이 변하는 물 위의 깃털처럼 떠돈다
사랑 가까이에 죽음 가까이에 갈수록
둘은 구분할 수 없이 엉겨 붙는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무게를 얻고
죽음은 이루어짐으로 무게를 얻는다
투쟁처럼 감내하는 침전
도망처럼 내려가는 침몰
약삭빠르게 바닥을 차고 오르지 않는
진흙처럼 엎드린 인내
아무리 불러도 고개 들지 않는 마음의 문양으로
더 아래의 속인이 되어
격렬하게 파묻힌 마지막 건반으로
용광의 눈물이 되어 굳은
철괴의 손가락을
쥐고 걷는다
닻의 손을 잡은
끊어진 사슬의 휴식처럼
―『밤의 공항』,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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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Island
— 해상 매립
이원석
다리 끝
바다 한가운데
갈 때마다 돌을 버리고 온다
어떤 날은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서
무거운 돌덩이들이 아주 오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바닥에 닿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고 서 있다
나의 형태가 궤적을 만든다
물속을 비선형으로 비행한다
바닥으로 맴돌며 떨어지는 것일지라도
슬픔의 문양을 따라 결국 침전하고야 마는 부유물처럼
얼굴을 가리고 내려간다
눈물은 떨구는 것이 아니라
추락의 행로에 남겨 두는 것
밤이 끝나고
진짜 밤도 끝나고
진짜 마음도 더 이상 휘젓지 못해
천천히 굳어 갈 때
그걸 떼어내 물속에 놓아줄 때
그건 헤엄쳐 제 살길을 살아가는 걸까
남김없이 가라앉는 걸까
어떤 날은 바람이 불고 폭풍이 치고
파도가 일어서 내 멱살을 쥐고 진실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결함을 인정하도록 설득하기 시작하면
쓰지 않으면 사라질 모든 것을 붙잡아 두려고
눈이 퇴화된 심해의 돌들이 입을 벌려
소리 지르기 시작한다
가라앉기 시작하는 순간은
모래 한 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진짜 진짜 하지 마 로이
너한테 진짜라는 게 있어?
이곳을 만들기 위해 오래 준비했어
사람들이 모두 떠나갈 때까지 기다렸어
여러 차례 무너뜨렸어
사람들이 쓰러뜨리지 못하게
먼저 바닥에 쓰러졌어
버려둘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물속에서 물기를 잃는다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새가 울 때까지
손을 거둘 때까지
기대받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지
인생에 타인을 빼면 불행할 것도 없지
외로움만큼 상처받지 않는 일도 없지
더 깊은 바다에 가야
더 오래 떨어질 수 있지
―『밤의 공항』,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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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Train
— 공항 철도
이원석
내가 급하게 구조 신호를 보냈을 때
네가 보내 준 음악은 Undercurrent
먼지가 쌓인 합판을 긁는 잡음 속에서
유리잔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설적이게도
밤의 전철은 하얗게 태우듯 밝아
땅 밑을 낮게 흐르는 철로를 타고
전송해 준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물속에 빠뜨린 네 눈알처럼 흐리게
이리저리 흘러 다녔다
승객들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고도 오래 함께 간다
각자의 꿈이 각자의 것이듯
각자의 고통 또한 골고루 나누어 가졌을 뿐
함께 할 수도 덜어 줄 수도 없다
각자의 발밑과 각자의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혹은 각자의 지옥
그러다 고개를 들어 보면 모두 사라져 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순 없다
불안하던 유리잔이 쓰러진다
무거운 잔은 무거운 소리를 낸다
한번 내려오면
지상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알 수 없어서
속도에 맞춰 떠내려갈 뿐
다시는 떠오를 수 없다
하나 하나 떠올려 봐요
가사가 없는 노래 아래로 흐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계를 밤과 너, 둘로 나누고
한쪽으로 침잠하는 방법을 고안했어
너를 찾을 수 없는 세계에 너를 만들고
흘러 다니는 삶을 찾아냈어
모두가 환한 빛 속을 걸어도
몇몇은 높은 곳에 들어 올려져 말라 가고
또 몇은 아래로 아래로 흐르다 흐려진다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지나
눈 뜨지 못할 현실을 마주하고는
눈알을 물에 빠뜨린다
눈이 젖는다
잔을 거꾸로 매달면 종이 되었다
우리도 거꾸로 매달려 운다
오래 마음에 남을 소리가 났다
밤과 너,
세계를 둘로 나누고
흘러 다녔다
―『밤의 공항』, 타이피스트, 2025.
폐쇄된 밤의 공항을 직접 경험한, 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실체적 존재 방식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폐쇄된 밤의 공항을 직접 경험한, 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실체적 존재 방식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원석이 두 번째 시집 『밤의 공항』을 타이피스트 시인선으로 출간했다. 첫 시집 『엔딩과 랜딩』(문학동네, 2022)이 끝과 도착 사이의 감각을 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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