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린 기자
최인혜 시인의 『아동 학대의 그림자―태아는 우주다』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태아가 “엄마의 감정과 말소리, 심장 소리를 통해 자신이 맞이할 세상을 감지”(‘작가의 말’)하는 우주라는 생각으로 어린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아동 학대로 나타난 제 현상을 면밀하게 탐구한다.
『아동 학대의 그림자―태아는 우주다』는 아동 학대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와 더불어 저자가 직접 경험했던 아동 학대 결과를 자전적 글쓰기를 통해 아프게 담아낸 책이다. 몸은 성장하여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내면의 상처는 멈추지 않아서,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른바 ‘어른 아이’로 살아가는 존재들이 많다. 그러한 ‘어른아이’를 대변하듯 저자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과감히 공개하며,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아린 마음을 짓누른 채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그래서 이 책은 공감대가 넓을 수밖에 없고 깊고 아픈 울림과 감흥을 줄 수밖에 없다.
1부에서는 아동기 경험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심리학적 연구와 현실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사회관계망 속에서 아동 학대의 피해자가 자기도 모르게 표출하는 여러 반응을 살펴보고, 관계의 맥락이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지 세세하게 짚어 준다.
2부에서는 저자의 어린 시절과 아동 학대 경험,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라이프스토리로 풀어낸다. 저자는 제주훈련소 근처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십 대 소녀의 성을 착취한 군인의 딸로 성장하면서, ‘사생아’로 외면당하고 굶주림과 학대받았다. 그런 기억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았다. 아이 때 받지 못한 사랑이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제 현상을 낳게 되는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엔 어떤 어려움이 따랐는지를 덤덤하게 그려낸다.
3부에서는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탐색할 수 있는 자전적 글쓰기 프로그램을 부록으로 담았다.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집단에서도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아 성장을 위한 2박 3일 단기 글쓰기 프로그램과 16주 프로그램은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유익함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아동 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책이 아니다. 학대의 실상과 더불어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또 다른 제 문제와 현상을 과감히 다룬다. 아울러 저자의 경험적 글쓰기를 통해 아동 학대 상황에서 나타난 심리적 맥락과 치유의 어려움을 100% 공감할 수 있게 펼쳐 보인다.

<책 속 구절 맛보기>
오늘날 미디어 매체를 통해 아동 학대와 성폭력 사건들이 빈번하게 쏟아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동 학대와 폭력을 넘어 방임과 살해까지 자행되고 있음이다. 사람이 왜 그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예방 차원에서 가해자들 이면을 들여다보는 국가정책도 크게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 피해 아동이 성장 후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 학대 상처가 회복되지 않으면 가해자가 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 피해당하던 기억이 마치 복사되듯 세포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은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세포로 구성된 몸은 저항한다. 아동 학대나 성폭력 또는 교통사고 및 화재 트라우마처럼 언제라도 그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은 공포를 느낀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공황장애(Panic Disorder)라 한다. 공황장애가 나타나는 정신적 외상은 인류 역사와 문화에도 영향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는 5천 년 역사 속에서 무수한 전쟁과 각종 재앙을 겪었다. 그랬음에도 매번 새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농경과 놀이문화의 영향이다. 풀 냄새와 흙냄새는 안정을 제공한다. 우리네 옛 농경시대에는 춤추고 노래하며 씨뿌리고 밭을 맸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처의 앙금도 상당 부분 치유된다. 현대 문명은 흙과 동떨어진 삶이다. 콘크리트로 밀집된 도시의 치열한 경쟁은 생활 전쟁이다. 이기주의적 경쟁 스트레스는 과거 재앙이 기록된 DNA 기억도 소환하고 있지 않을까.
―「잃어버린 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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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라는 틀은 걷어내지 않으면 오래될수록 더 단단한 왜곡과 고집으로 굳어진다. 왜곡과 고집에 가려진 진정한 자기를 찾으려면 성장 과정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매 맞는 모습을 보고 자랐는가? 그렇다면 딸은 더 강력한 폭력자에게 순종하며 의존적으로 사는 반면, 남편의 기강을 확고하게 잡으려고 오히려 자기가 폭력을 쓸 수도 있다. 물론 아들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습득하여 아내를 강압적으로 리더하는 반면, 어머니를 폭행하던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고 차라리 아내에게 맞고 사는 남편도 있다. 때로는 이러한 자신이 본래 성격이라고 자기 합리화로 포장하지만, 이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자기를 가두고 있는 틀을 깨고 지금 여기에 있는 상처 입은 ‘자기’를 만나보자. 어린 시절 억압되고 두려웠던 ‘자기’를 위로하며 성장시키자. 만일 상처의 틀을 처리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자기가 받은 그대로 누군가에게 되돌려주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자. 그 피해의 대상은 연인관계나 부부관계 또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약한 쪽으로 쏟아진다. 청춘 남녀들은 연인관계가 오래가지 못하고, 결혼한 가정은 이혼하거나 평생 부부싸움으로 불안을 조성하게 된다. 이러한 패턴이 수정되지 않으면 그 자녀들은 부모의 모습을 복사한다.
―「환경의 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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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성 애착장애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강한 경계심을 보이는 유형을 ‘억제성 애착장애’라 하며, 반대로 낯선 이에게도 무분별하게 애착 행동을 보이는 유형을 ‘탈억제성 사회적 관계 관여 장애(DSED)’라 한다. 억제성 애착장애는 영유아기에 양육 포기나 학대를 경험했을 때 주로 나타나며, 애착 회피가 심한 경우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기도 한다. 반면, 탈억제성 유형은 양육자가 자주 바뀌거나 변덕스러운 학대를 일삼아 애착 불안이 극도에 달했을 때 나타나기 쉽다. 이때는 산만한 태도나 충동성이 두드러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오인되기도 한다.
자신을 지켜주어야 할 부모로부터 오히려 안전을 위협당할 때, 아이는 부모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는 모순된 감정에 휩싸인다. 부모의 폭력이나 언어폭력이 언제 시작될지 예측할 수 없기에, 아이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무력하고 나쁜 존재’라는 죄의식과 자기 부정의 늪에 빠지게 된다. 비극적인 것은,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를 사랑하고 갈구한다는 점이다(오카다 다카시, 『나는 상처를 가진 채 어른이 되었다』 2015).
이 대목은 마치 나의 이야기만 같다. 마땅히 나를 보살펴주어야 했던 생모의 예측 불가능한 폭력과 언어 학대는 내 전 생애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삶의 길목마다 거친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 「극과 극을 낳는 애착 상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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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트라우마를 겪고도 태연하게 견디는 사람은 자동센서가 고장 나지 않았을까. 평생 외로움도 두려움도 몰랐던 나처럼 대단히 비정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공황장애를 앓았다. 이웃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로부터 성희롱과 괴롭힘을 당하느라 불안하고 두려웠다. 아직도 한국 농촌에 남아 있는 배타적이며 남성우월주의적 문화가 불공정할 때가 많다. 그들은 “여자가 꼬리 쳤겠지”라는 여성 비하적인 언어를 서슴지 않았다. 소통 불가한 대상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집단적 따돌림당하는 사람은 맹수 무리 중에 놓인 먹잇감과 같다. 숨 막힐 듯 힘들었다. 가까운 지인들은 답을 주려고만 했다. 어떤 이는 성경 구절을 제시하고, 어떤 이는 “당신 심리치유 박사잖아. 왜 그래?”라며 빈정거렸다. 모두 욥의 세친구들 같았다(욥기서 2:1-13).
앞부분에서 언급했듯이 마음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답이 아니다. 공감과 버텨주기이다. 한심스럽다는 지인들의 눈빛은 오히려 비참함을 느끼게 했다. 외로움과 두려움과 분노가 겹쳐 호흡이 고르지 못했다. 이럴 때 사고 치거나 사고당한다.
―「세포의 반응」중에서
아동 학대의 실체를 경험한 시인의 간절한 체험적 글쓰기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아동 학대의 실체를 경험한 시인의 간절한 체험적 글쓰기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최인혜 시인의 『아동 학대의 그림자―태아는 우주다』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태아가 “엄마의 감정과 말소리, 심장 소리를 통해 자신이 맞이할 세상을 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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