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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춘천의 르네상스를 꿈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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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6. 4. 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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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식 유고집 B급을 사랑한 춘천의 간서치달아실에서 출간

 

 

하린 기자

 

춘천의 문화예술계를 묵묵히 지원하며 문학의 막후역할을 했던 고() 김현식 작가의 1주기를 맞아, 그의 생전 글들을 모은 유고집 B급을 사랑한 춘천의 간서치(달아실)가 출간되었다. 이번 유고집은 그가 생전 페이스북에 남긴 산문과 필명 노영무로 쓴 시, 월간 <태백> 발행인의 편지 등을 엮은 것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지식인의 치열한 사유 세계를 복원해냈다.

 

작가 김현식은 춘천 옥광산을 운영하는 대일광업의 대표였고, 월간 <태백>의 발행인이자 달아실출판사의 설립자였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간서치였고 수집가였다. 하루 서너 권의 책을 읽고 수만 점의 유물을 수집하며 춘천 문화의 은자(隱者)의 거인으로 살았다.

 

세상은 속도에 미쳐 있다. 어제 나온 스마트폰이 구식이 되고, 방금 올라온 뉴스피드가 1초 만에 잊히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지 망각한 채 표류한다. 우리가 시대에 세상의 속도를 거부하고 평생을 고서와 골동품, 그리고 수만 권의 책 속에 자신을 유폐시킨 사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춘천의 간서치(看書痴)’, 즉 책에 미친 바보라 불렀다.

 

생전에 김현식은 “B급을 사랑했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만화책부터 곰팡이 냄새나는 고서적, 먼지 쌓인 LP판까지 수집하며 그 속에서 세상이 보지 못한 진실을 읽어냈다. 그에게 책은 물질이 아니었다. 누군가 책을 선물 받으며 물질로 내 환심을 사려는 거냐고 물었을 때, 그는 사그라지는 마음을 느끼며 탄식했다. 책은 영혼의 파동이었고, 시대의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이 유고집은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숨결이다. 그는 거북이와 토끼의 우화를 빌려 우리에게 묻는다. 자빠져 쉬고 있는 거북이가 묻는 말, “저기 88올림픽은 잘 끝났나?” 이 엉뚱한 질문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바보의 소리가 아니다. 본질을 잊은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를 향한 뼈아픈 조롱이자, 멈춰 서서 삶을 되돌아보라는 정중한 권고다.

 

이제 그의 서재 문이 열렸다. 춘천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 그가 남긴 수만 권의 책과 문장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당신은 잠시 세상의 소음을 잊고 간서치가 머물던 그 깊고 고요한 지혜의 숲으로 초대될 것이다.

 

-

 

<책 속 시 맛보기>

 

탕자의 기도

 

김현식

 

짐짓

양보와 타협이라는

남루한 외피를 입힌

부박한 방어기제를 걸치고 살아왔으나

실은

비루하기 짝이 없는

패자의 변임을 자복합니다

간청하오니

 

부디

시험에 들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 물든 저를

내버려두옵시고

땅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이

행여

하늘에서라도 이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B급을 사랑한 춘천의 간서치, 달아실, 2026.

 

-

 

척사斥邪

 

김현식

 

우선 커다란 솥을 꺼내 깨끗이 닦아야겠어

내일은 팥을 골라 불려놓아야 해

모레쯤엔 삶은 팥을 으깨어 죽을 쑤고

찹쌀이나 감자로 옹시미도 빚어야겠지

 

하지에는 솥을 끼고 앉아

오가는 이들에게 팥죽 한 그릇씩

뻘뻘대며 마시게 할 거야

 

귀신은 여름에 더 토실득실한 거 알잖아

겨울에 납량특집 하디?

 

그럼 동짓날엔 무얼 하냐고?

 

메주나 쑤어야지 뭐

팥도 많이 남았는데

―『B급을 사랑한 춘천의 간서치, 달아실, 2026.

 

-

 

각자행

 

김현식

 

해삼의 눈으로

문어의 영혼을 찾겠다는

 

부디 힘들게 살아라

 

나는

편안하게

문어의 눈으로

해삼의 영혼을 보겠다

 

네가

낙타 등에서 흔들리며

멀미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는

고래의 너른 잔등에 누워

어김없는 안락을 취하리니

―『B급을 사랑한 춘천의 간서치, 달아실,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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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춘천의 르네상스를 꿈꾼 작가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춘천의 문화예술계를 묵묵히 지원하며 ‘문학의 막후’ 역할을 했던 고(故) 김현식 작가의 1주기를 맞아, 그의 생전 글들을 모은 유고집 『B급을 사랑한 춘천의 간서치』(달아실)가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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