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린 기자
2021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변윤제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를 타이피스트 시인선으로 발간했다. 첫 시집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와 『반국가세력』를 통해 현실과 환상, 비애와 유머가 뒤섞인 독창적인 감각의 세계를 구축해 온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는 인간 중심의 감정 구조를 서서히 해체해 나가는 면모를 드러낸다. 인간만이 슬픔을 독점하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감지하고, 모든 존재가 서로의 외로움을 나누어 갖는 세계의 면면들을 시화시킨다.
변윤제는 감정을 단순히 설명하지 않는다. 냄새와 기척, 곡물의 온기 같은 구체적인 감각들 속에서 인간의 감정이 몸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그의 시는 비극 앞에서도 지나치게 비장해지지 않으며, 죽음의 한가운데에서도 존재의 감각을 발현시킨다. 설명할 수 없는 삶 앞에서 오래 중얼거리는 마음으로, 웃음과 슬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독특하고 생생한 감각을 선보인다. 그리하여 인간과 벌레, 나무와 귀신 같은 존재들까지 서로의 외로움과 감각을 공유하며 살아 움직여서, 날것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를 독자들이 읽게 되면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슬픔 자체가 아니라, 슬픔이 인간의 몸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가를 느끼게 해줄 감각일 것이다. 슬픔은 하나의 정서로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냄새가 되고, 벌레가 되고, 곡물의 온기와 팥죽의 냄새가 되며, 때로는 코딱지 같은 우스움으로 변형된다. ‘슬픔의 실체화’ 내지는 ‘슬픔의 감각화’. 이것이 변윤제가 이번 시집에서 이루어낸 성과이다.
이번 시집에서 변윤제의 상상력은 이전 시집보다 느리지만 깊은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전 시집들이 세계의 균열을 향해 바깥으로 속도감 있게 뻗어 나갔다면,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에서는 상실 이후 남겨진 인간의 내부를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만 오래 들여다본다고 해서 비극을 지나치게 숭고하게 만들거나 고결한 무언가로 암시하지 않는다. 슬픔을 높여 세우기보다 오히려 생활의 가장 낮고 사소한 감각 속으로 끌어내리는 삶과 죽음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변윤제만의 감각 지대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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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변윤제
엄마의 영정 앞에 앉아
봉안당에 놓을 그녀의 사진 고른다
누나는 말하네
나중에 엄마를 기억하는 시를 쓰라고
그녀를 헤아리는 글 한 편 봉안당 사진 옆에 걸어 두라고
아니,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시라니
시는 슬픔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다
슬픔이 되어 보는 일
눈물 흔들리는 사려나무 그늘
슬픔의 가는 가지를 가만히 주무르는 일
거기 스며드는 볕과
영혼의 냄새를 그저 짐작만 해보는 일
엄마가 언제 내 시를 좋아했냐고
나는 투덜거리고
누나는 말하네
자기가 보았노라고
엄마의 유품이 놓여 있는 방
내 첫 시집을
엄마가 밑줄 그어 가며 읽었노라고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니
시는 그렇게 읽는 게 아닌데
쓱— 펼쳐서
마음에 드는 페이지마다 침을 묻혀 가면서
피가 튀면서
냄새와 냄새의 얽힘, 망연자실, 도무지 사랑스러워지지 않는 어떤 마음
막연히 서성이는 일인데
봉안당,
그 옆에 놓일 시는
평생 써지지 않을 것이지
어쩌면
평생 쓰이는 중일지도 모르지
첫 시집을 낼 무렵
엄마는 암 판정을 받았다
23년의 어느 겨울
출간 축하한다며 떠돌던 무수히 많은 골목
나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이었지만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런 넋두리는 시가 될 수 없는데
이런 주절거림 시가 될 수 없는데
나는
엄마를 중얼거리면서
주절거리면서
쉼 없이 엄마로부터 출발하는 시인
엄마를 출발시키는 시인
엄마가 마침내
모두 없어진 어느 날에
이 중얼거림이 물끄러미 날 보고 있을 것이다
엄마 대신에
엄마의 팔다리 대신에
엄마의 눈과 귀 대신에
엄마에 대한 쉼 없는 이 주절거림만이
넋두리
주절거림
호흡과 맥박이 흘러드는 어느 장례식장의 복도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엄마라 외치는 순간
뒤돌아보는 세상의 모든 엄마
나는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타이피스트,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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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우울증
변윤제
창문에 매달려 불타는 벌집을 보았지
바닥에 떨어질 그 집을 격려했지
곤충의 버둥거림을 북돋웠지
사람을 응원하는 일은 촌스러우니까
산책을 나가
불광천엔 날벌레가 들끓는 구덩이가 많고
구덩이마다
밟고 선 물귀신은 더욱더 많고
꿀벌의 귀신이 따라오는 일은
아무래도 평범하네
불탄 벌집의 태몽을 대신 꾸어 준 다음 날
온몸은 자꾸 재가 되어 버리고
좋았어
오늘의 병증이 남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여서
점점이 걸어가는 기나긴 머리카락
미끄덩한 미끄덩한
죽은 벌을 밟으면
귓속에 시계태엽 감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작고 조밀한 자동 꿀벌 인형
태어나 버렸다
생일도 기일도 아닌, 그냥 아무 날에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타이피스트, 2026.
-
속
변윤제
속상하다,
라고 말하면
비로소
속이 생긴다
구릿빛 녹슨 동수저로 파먹을 수 있는
차가운 파동
메아리
레몬빛 비구름이 몰아치고 있는
눈동자에도
자궁에도
등에도
보이지 않는 구멍 깊숙한 곳곳에
벌레가 돌아다닌다는
보이지 않는 것도 세상에 분명히 있다는 그녀의 말이
아득해지는
속이 상해, 정말 속이 상한다
엄마
이 속에
마음이 있다는 걸
나는 믿을 수가 없는데
속이 상해,
그 말을 들으면
적어도
그 속을 열고 함께 발자국 소리를 낼 수 있을 것만 같아
나는 병을 긍정하네
세상에 없는 것이
세상에 있다고 여기고 마네
희망으로 불행을 편들어 준 적 없듯이
불행으로도 희망의 편을 들어주지 말기를
공평한 어둠
공평한 벌레의 수많은 다리
공평한 가려움증
머리가 지끈거릴 때마다
손목엔 번개가 자라고
갈비뼈 안에 장마가 들이차고 있다
미움은 사랑에 너무 일찍 도착한 나무배
가슴 아래에
명치 밑에
두근거리는 무언가가 마음이라는 사실에
구릿빛 레몬나무
신 물방울이
한 방울씩
정수리로 떨어지고 있는데
―『다들 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타이피스트, 2026.
모든 존재가 서로의 외로움을 공유하는 세계를 알고 있니?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모든 존재가 서로의 외로움을 공유하는 세계를 알고 있니? -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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