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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시인의 〈감동과 감탄〉 1 _ 이현승의 「병간」

포엠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2. 10. 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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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간

 

이현승

 

아픈 사람을 빨리 알아보는 건 아픈 사람,

호되게 아파 본 사람이다.

한 사나흘 누웠다가 일어나니

세상의 반은 아픈 사람,

안 아픈 사람이 없다.

 

정작 아픈 사람은 한 손으로 링거 들고

다른 손으로는 바지춤을 잡고

절뚝절뚝 화장실로 발을 끄는데

화장실 밖 복도엔 다녀온 건지 기다리는 건지

그 사람도 눈꺼풀이 무겁다.

 

방금 누고 온 오줌과 색이 똑같은

샛노란 링거액들은 대롱대롱 흔들리고

통증과 피로의 색이 저렇듯 누렇겠지 싶은데

몽롱한 눈으로 링거병을 보고 있자니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도 잘한다는 생각.

링거병이 따뜻하게도 보이는 것 같다.

 

— 《현대시학》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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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말해 좋은 시는 감동과 감탄을 주는 시다. 감동은 읽었을 때 정서적 파장, 울림, 떨림 등을 선사해주는 것이고 감탄은 읽었을 때 미학적 충격을 주는 것이다. 미학적 충격이란 감탄사가 동반된 황홀한 독자 반응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아, 이렇게까지 섬세한 시는 보지 못했어.” “아, 상징이 정말 대단한데…” “아, 발상과 상상이 탁월해.” “아, 비유가 이렇게 신선할 수 있다니….” “아, 예상 밖의 시적 반전.” “아, 알레고리 방식이 너무 좋아” “아, 풍자 미학을 이렇게도 구사할 수 있구나.” 등과 같은 반응이 미학적 충격이다.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좋은 시에 해당한다.(둘 다 있으면 더더욱 좋은 시) 이번 연재를 통해 감동과 감탄을 주는 시를 많이 소개하고 공유를 할까 한다.

병간은 병자를 돌본다는 뜻이다. 병간을 할 때 우리는 병자의 병을 대신해 줄 순 없지만 “아픈 사람을 빨리 알아보는 건 아픈 사람”이고 “호되게 아파 본 사람”이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태도로 다가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병간은 진정성 측면에서 ‘최선’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전에 아팠다가 병이 다 나은 사람들은 어떤 동병상련의 심리를 가지고 있을까? 고통의 순간이나 실감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동병상련이 풍부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100% 감정이입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100%에 해당하는 동병상련은 지금 현재 같은 병으로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이다. “한 손으로 링거 들고/ 다른 손으로는 바지춤을 잡고/ 절뚝절뚝 화장실로 발을 끄는” 사람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화장실 밖 복도”에서 서성이는 눈꺼풀이 무거운 사람(병자)이다. “샛노란 링거액”을 보며 “통증과 피로의 색이 저렇듯 누렇겠지” 하는 마음을 서로 나누고 있다면, 그들은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도 잘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진짜 진짜 제대로 된 동병상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타자의 고통과 직면하게 된다. 그럴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진실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상황을 공감하는 것, 고통 위에 상처를 덧입히지 않는 것, 최선을 다해 지지하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하린

2008년 《시인 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이 있고,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와 시 창작 안내서 『시클』과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와 『이것만 알면 당신도 현대 시조를 쓸 수 있다』가 있음. 청마문학상 신인상(2011),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2015), 한국해양문학상 대상(2016),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20)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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