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또한 천사들의 장난감을 가졌지
김륭
다른 사람을 가지고 싶은 마음
몸 밖으로만 떠돌다 입이 지워진 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그러나 언제나 늙은 고아 같아서
아프다는 말은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라고
쓴다. 가만히 물을 두 뺨에 대 보는
돌멩이처럼
얼마나 더 울어야 보일까?
몸에 없던 구멍이 생겼다 개가 드나드는 개구멍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꺼내거나 사람이 사람 속으로
숨어드는 구멍, 천사들이 날개를 말리거나 장난감을
갖다 놓아 아직 그 누구도 찾지 못한
구멍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어머니 두 뺨에도
스르르 나타나기도 하는 구멍에 눈이 멀고
귀가 먼 나는, 그런 내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당신 또한 옛날 영화 속으로 돌아가서는
오래된 미래가 됩니다 다시
기다려야 됩니다
아주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나이가 아홉 살이다
내 몸인데 틀림없는데 내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세상에, 세상에는 나보다 더 재미있는 것도
나보다 더 재미없는 것도
없다, 나는
물을 가지고 노는 돌멩이처럼
기다린다 죽은 듯 가만히 앉아서
날개가 돋아나기를
― 『나의 머랭 선생님』, 시인의일요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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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듯이 가만히 기다리는 일은, 할 수 있는 일이 기다리는 일과 죽는 일, 이 두 가지밖에 남지 않아서 겨우 하는 일이다. 그래서 진심이 된다. 아픈 어머니 곁을 지키며 오래된 미래를 마주하는 자식의 일도 그러하다.
세상에서의 마지막은 꼭 아파야만 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들 때 시인은 속삭인다. 사람을 꺼내거나 사람이 숨어드는 구멍, 천사들이 몰래 장난감을 숨겨 놓기도 하는, 몸에 없던 구멍이 생기려고 아픈 것이라고. 천사가 장난감을 숨겨둔 탓에 아무도 찾지 못하는 그 구멍은 얼마나 더 울어야 보일까. 구멍을 찾으면 어머니 속으로 다시 숨을 수가 있을 텐데, 천사가 어머니를 꺼내 가는 일을 막을 수 있을 텐데. 구멍을 찾지 못해,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늙은 고아 대신 아홉 살 아이가 되어, 기어이 어머니를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김병호
2003년 《문화일보》 등단. 시집 『달 안을 걷다』 『밤새 이상을 읽다』 『백핸드 발리』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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