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페이지도 파도라면
이원
펼쳐놓은 책은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았고
그 페이지를 읽어야 했지
책은 꽤나 두꺼웠거든
문제는 죽은 사람들이 그 페이지로 자꾸 들어가는 거야
펼쳐놓은 페이지가 거기였으니
거기뿐이었으니
그거 알아? 죽은 사람은 무거워
하나 남은 표정을 못 놓치거든
점점 내가 무거워진 것은
그 페이지를 넘기려고 했기 때문이지
무거워서 들 수가 없고
거기는 와글와글 이어서 상가의 음식은 입뿐인 허기여서
상가의 근조는 여기로 몰려들었던 거야
사실 나는 몰라 죽은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어
죽은 얼굴을 본 적은 있지
이 책이 얼마나 거대한 줄 알아?
놀랍게도 어마어마하게도
딱 책상 만해
지금까지의 시간을 다 쏟아 부어
한쪽으로 접으면
양쪽이 없어지고
표정은 봉인되고
책상은 심연의 책이 된다
다무는 입술과 벌리는 입술을 떼어놓지 않으면
오른쪽 왼쪽 영영 잃어버린다고 약속하면
입들이 눈보라로 던져지면
다시 출렁일지도
다시 운동화를 신고 문 밖으로 나가게 될 지도
그만!
그만!
그러면 나는 볼 곳이 없어져
나는 내 눈을 잃어버리게 된다
― ≪문장 웹진≫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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