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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시인의 〈감동과 감탄〉 3 _ 박제영의 「못」

포엠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2. 11. 1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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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던, 삼촌은 죽어서 못이 되었네

엄마야 누나야 가슴 속에서, 밤마다 출렁이는 시퍼런 못

녹이 슬고 있는 두 여자가 있었네

 

“엄마야 이제 그 못 뽑자 제발”

 

엄마는 이십 년을 보챘지만 외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심장에 못을 키웠네

 

“못 된 것 못 된 것”

 

외할머니 울음을 삼킬 때마다 못은 조금씩 깊어졌네

눈물샘이 다 마를 때까지 깊어진 못이 마침내 외할머니를 삼켰네

외할머니 봉분 올린 그 밤 엄마는 외할머니가 막내 삼촌 젖을 물리고 있는 꿈을 꾸었네

 

“엄마가 이제야 못을 뽑았구나”

 

엄마가 환하게 울고 있었네

― 『식구』, 북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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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할로원 축제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압사를 당해 35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중에서 158명이나 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사망했으니 참사 중의 큰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참사를 보면서 눈물과 함께 화가 동시에 치밀었다. 사전에 미리 막을 수 있는 참사라는 생각 때문이다. 좁은 골목길에 몇만 명이 몰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미리 선제적으로 대비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하게 됐다. 필자는 ‘이태원 참사’가 2022년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렇고 이번 참사 때도 그렇고 무능한 건지 무지한 건지 알 수 없는 정부의 태도와 대책에 분노가 치밀었다.

많은 시인들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문학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도 이 참사에 대해 시를 쓰려고 했는데, 참사 현장이 떠올라 도저히 써 내려갈 수가 없었다. 단 한 구절이라도 희생당한 분들에게 누를 끼칠까 봐하는 염려도 앞섰다.

그러다 문득 박제영 시인의 「못」이 떠올랐다.

「못」은 감동과 감탄 중에서 감동의 영역에 해당하는 시이다. ‘못’이 가진 상징성이 쉽고 명쾌하게 감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천수를 다 누리거나 장수를 하게 되면 사람들 가슴속에 ‘못’이 생기지 않는다. 슬픔이나 그리움만 남게 되고 한이나 분노, 억울함 같은 ‘못’은 다가오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당한 분들의 부모님이나 가까운 지인들은 이제 20년 넘게, 아니 죽을 때까지 “밤마다 출렁이는” ‘못’을 심장 안에 키우며 살게 될 것이다. 특히 부모들은 자신의 봉분을 올릴 때까지 스스로 ‘못’을 뽑지 못하는 안타까운 삶을 지속할 것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면 시퍼런 분노는 어느 정도 무뎌지겠지. 그러나 ‘못’은 붉은 녹을 껴입고 그대로 박혀 있을 것이다. 일평생 흘리게 될 슬픔(눈물) 때문이다.(하린 시인)

 


 
하린

2008년 《시인 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이 있고,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와 시 창작 안내서 『시클』과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와 『이것만 알면 당신도 현대 시조를 쓸 수 있다』가 있음. 청마문학상 신인상(2011),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2015), 한국해양문학상 대상(2016),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20) 수상.

하린 시인의 〈감동과 감탄〉 3 _ 박제영의 「못」 < 포엠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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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린 시인의 〈감동과 감탄〉 3 _ 박제영의 「못」 -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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