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게 배우다
한혜영
물이나 구름은 만나면 하나가 되지
스민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면서
어떤 걸 자연스럽다 하는지를 가르치지
단단하게 여문 것과 부드러움의 조화
바위는 등과 옆구리 물에게 기꺼이 내줘
천만 길 뛰어내릴 때 마음껏 구르게 하지
한자리서 누군가를 그토록 변함없이
기다려본 적 있나 돌아나 나무처럼
일생을 그리움 하나로 사는 법도 배우지
― 『뒷모습에 잠깐 빠졌을 뿐입니다』, 가히,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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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를 통해 자기 역할을 해낸다. 이 시에서는 ‘스민다’는 표현으로 만남을 이야기한다. “물이나 구름이 만나면 하나가 되”는 것처럼 자기 고유한 정체성을 간직한 채 섞여 드는 것이다. 또한 “단단하게 여문 강과 부드러움의 조화”처럼 자연에서는 반대의 극성極性이나 물성物性끼리 만났을 때 효용성이 생긴다. 즉, 추운 곳에 불이 가면 그 가치가 커지고 뜨거운 곳에 물이 가면 더위를 식혀 주면서 물의 가치가 올라간다. 어떤 기운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몰려 있다면 효용성을 잃고 그 가치를 무너뜨릴 수 있다.
또한 나무가 위로 솟아오르는 속성이 있어 부드럽다면 쇠는 마르고 단단하여, 견고하게 잡아 주는 느낌이 있다. 나무 지팡이에 쇠의 물성物性인 단단하고 야무진 기운이 적용되지 않으면 나무는 지팡이로서의 기능을 온전히 유지하기 어렵다. 나무의 반대 극성인 쇠의 기운을 만나 쓸모가 생기는 것이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데 꽃은 부드럽고 열매는 단단하다. 같은 자리에 활짝 핀 꽃과 단단하게 맺어진 열매가 시차를 두고 공존한다. 단단하게 잡아 주는 것이 있으니 강력하게 튀어나오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 고정된 바퀴 축이 있으므로 움직이는 바퀴의 쓸모도 생긴다.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도 함께 있어야 한다. 주체는 이 또한 자연에서 배운다. 물과 구름이 하나가 되는 것처럼,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서로에게 스며들어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반대 극성, 혹은 서로 다른 물성이 만나 어떤 능력이나 가치를 발현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은 순수한 모습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모든 것은 자기 쓸모를 드러내기 위해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반대 물성과의 만남을 꿈꾼다. 자신의 정체성을 품은 채 다른 존재들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것이다. 돌이나 나무처럼 “한자리서 누군가를 그토록 변함없이”기다리며 “일생을 그리움 하나로 사는 법” 또한 배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답고 의미있고 가치있게 스며드는,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일이다. (이송희)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대명사들』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 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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