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 기자
2022년 《열린시학》 신인 작품상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문순 시인이 첫 시집 『돌에게 자꾸 들켰다』를 더푸른시인선 002번으로 발간했다. 김문순 시인은 「애완 돌」 외 3편으로 등단 당시, “대상이 가진 하나의 매력적인 지점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직관적으로 사유한 후 꼭 필요한 언어만을 사용해 자연스럽게 시화시킬 줄” 아는 시적 자질이 출중한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등단 이후 그는 대상의 외연과 내연을 읽어내는 치밀한 시선과 사유로 읽어내는 시를 줄기차게 써오다가 작품 「세이렌」과 「박씨상방 접이식 모란 부채」로 제11회 전국계간지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김문순 시인은 “최초의 모티브를 확장시켜 시의 미학성을 가미할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나고, “발상 차원에서 고여있는 시가 아니라 파장이 점점 번져가게 하는 시작법을 선보였다.”고 평가받았다. 좋은 시의 조건에 해당하는 정서적 파장과 떨림, 울림 등을 김문순의 시가 동반하고 있음을 심사자들이 알아본 것이다.
해설을 쓴 오민석 평론가는 ‘골방의 고독’을 앓고 난 후 김문순 시인이 봄의 숨결에 닿고 있음을 분석했다. “골방은 현대판 동굴이다. 그에게 골방은 차단된 현실이며, 고독의 오지랖이고, 결핍이 사유의 옷을 입는 곳이다. 그에게 골방은 움직이는 방이고, 진화하는 세포이며, 바깥과 내통하는 주체의 내부이다. 그에게 골방은 거세된 몸이고, 날개가 다시 자라는 겨드랑이이며, 얼어붙은 몸이 봄의 연두로 내뿜는 숨결이다.”라고 언술했다. 그로 인해 『돌에게 자꾸 들켰다』엔 두 개의 시간이 겹쳐 있음을 제시했다. “죽음의 시간과 생명의 시간이다. 동굴의 시간은 그 자체 죽음의 시간이지만, 변화의 씨앗을 그 안에 내장한 시간이다. 시인은 죽음의 밭에서 생명의 씨앗을 찾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얼어붙은 고체의 시간에서 살아 흐르는 액체의 시간을 찾는다. 이 시집의 한 편에 눈물과 은둔, 결핍과 실패, 불안과 우울의 동굴을 불러오는 화자들이 있다면, 다른 편엔 그 대척점의 환희와 자유, 풍요와 희망, 그리고 변화를 부르는 화자들이 있다. 시인은 이렇게 다양한 화자들을 동원하여 움직이며 다른 무엇으로 계속 변화하는 세계를 형상화한다”고 김문순 시의 확장 지점을 예리하게 찾아냈다.
한편, 김문순 시인은 전국 계룡시낭송대회 대상 외 많은 시낭송대회에서 상을 받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시인협회인증 재능시낭송가로 활동하고 있다. 감동적인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시와 만나는 낭송을 통해 김문순 시인은 시를 육화시키는 방식을 터득했다. 육화된다는 것은 시와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육화가 『돌에게 자꾸 들켰다』에서도 기꺼이 발현되고 있다. 시집 곳곳에 들어있는 시를 낭송하듯 독자들이 읽는다면 시와 한 몸이 된 화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애완 돌
김문순
외로움이 해소될 때까지 돌을 사랑했다
걸림돌 같던 당신이 떠나고
신조어의 파생 같은 애완 돌을 만났다
돌의 생각은 어둠 속에서도 빛났고
나의 애증은 숙연해졌다
밤하늘의 별빛과 달빛처럼
쓰다듬어지는 일에 익숙해지는 맨살
살짝 어루만지다 보면
돌 속에서도 싹이 나올 것만 같다
넌 아직도 기다림을 믿니
흑요석이 밤마다 뚜벅뚜벅 걸어와 속삭였다
그렇게 나는 돌에게 자꾸 들켰다
들켜도 들켜도 부끄럽지 않았다
가끔 손안에 꼬옥 쥐고 있으면
반려의 기척을 내밀었다
쉬이 발설하지 않은 태도와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과묵
굳어버린 심장과
흘러내릴 수 없는 눈물이 필요 없어서
이젠 돌이 떠나면 내가 먼저 돌이 될 것만 같았다
―『돌에게 자꾸 들켰다』, 더푸른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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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
김문순
바다에서 탄생한 그녀의 노래가 지상을 떠돈다
가는 곳마다 치명을 부르는 목소리
피를 보고야 마는 잔인성이 질주한다
나도 이미 세이렌을 품고 있었을까
눅눅한 시간이 소리 없이 찾아와 배회할 때면
그믐처럼 어둠이 짙어 오는 심연
자발적이든 우발적이든 그녀를 만나려고 난폭해진다
결핍을 자꾸 물어뜯고 우울을 내내 뒤집어 쓴다
그때마다 안간힘으로도 어쩔 수 없이
쏘아 올려 펼치고 싶었던 날개
거미줄처럼 직조된 도시의 욕망 속에서
부질없는 몸짓으로 휘청일 때
꽃잎처럼 낙화를 바라는 세이렌의 목소리가
집요하게 미혹한다
나는 도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난파된 지 오래다
숨의 절정이 결말인 듯 비상을 띄워 깜박일 때쯤에야
감미로운 유혹의 목소리를 듣는다
괜찮아요
나에게 와요
절망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있으면 편안한걸요
끊임없이 부유하는 내밀한 세이렌의 부추김
먹빛이던 마음의 심지에 서서히 번져오는 죽음
도시가 나를 삼키기 전에 차라리 도시를 먼저 배반할까
손목에 통증이 번진다
세이렌이 울린다
다가온다
소실점 하나 점점 커진다
――『돌에게 자꾸 들켰다』, 더푸른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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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김문순
2월의 마늘밭
새 부리 같은 촉수의 리허설이 한창이다
흙의 옆구리를 비집고
영역을 넓혀가는 뿔의 액션
무대를 자처하는 흙이 온몸을 다 내주면
동시다발적으로 솟아오른다
꽃샘추위가 배경으로 깔리지만 아랑곳없다
물이 오르기 시작한 연기가
잔설마저 녹인다
봄바람과 봄비가 선뜻 조연을 자처한다
번갈아 가며 찾아와 해토를 부추긴다
마늘의 시간이 발단을 지나 전개로 넘어 간다
배경음악처럼 종달새가 날아와 운다
그때 나는 밭으로 간다
관객이 되어 기웃거린다
추임새를 보내는 그윽한 나의 눈빛
나의 호응과 마중을 알았을까
줄기를 쭉쭉 밀어 올린다
2월의 매운 시간 속
갈채를 보낸다
한파가 몰아치던 일주일 전만 해도
비극인 줄 알았는데
완연한 희극이다
――『돌에게 자꾸 들켰다』, 더푸른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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