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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입담과 사설이 서정성과 어우러져 펼치는 ‘낯익은 듯 낯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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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11. 1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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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격렬하고 비열하게작은숲출판사에서 발간

 

 

하린 기자

 

1987신동아에 시 믿음을 위하여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여 40년 동안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강병철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격렬하고 비열하게(작은숲)를 출간했다. 시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냥 스치고 넘어갈 일도 반추하고 속을 끓이는 게 그만의 감성이다.

 

그런 성격과 기질이 그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으리라고 글벗 황재학 시인은 말한다. 삶의 굽이굽이에서 마주쳤던 질곡을 마음의 갈피에 여며두었다가 예민하고 디테일한 촉수로 불러내 되살려 내는 특장(特長)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의 작업은 일상과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입담과 사설이 서정성과 어우러져 낯익은 듯 낯선 풍경으로 독자를 이끌면서 때로는 화자와 타자의 구분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시 <격렬하게 비열하게>를 비롯한 70여 편의 시가 실려 있다. 서해안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유년의 일기장과 이루지 못한 사랑들, 요양병원에 5년째 입원한 어머니의 사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일상에서 무심하게 포착된 모티브를 매의 눈으로 잡아내어 섬세한 입담과 함께 구구절절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4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시를 쓰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균질적인 미학성을 드러낸다. 격렬하고 비열하게는 그의 그런 시적 아우라를 잘 대변해주는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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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마룡저수지

 

강병철

 

당장 나가라 논문서 날린 아부지

작대기 피해 사립문 뛰쳐나온 열다섯이다 투전판 그만 가라구유씨헐씨헐 오솔길 치달리며 흔들리는 물결, 소년의 심장처럼 늦가을 하늘 울멍울멍 받치는 중이다 수직의 중천으로 대열 이루는 기러기 그림자 거꾸로 날개 치는

 

시퍼런 물결이다 사춘기 은유 내 마음의 호수떠올리며 그 저수지 호수로 호명할 때마다 짙은 녹색 가라앉는다 고추잠자리 보금자리였다가 뭉게구름 유리 거울 되었다가 풍덩 빠지고 싶은 어미의 젖가슴으로 변신한다 마개 없는 박카스 병과 끈 떨어진 슬리퍼 딸려 나오는 건 눈 감았는데

 

순자 누나 떠오르면 숨이 막힌다 보리피리 불어주던 열여덟 누나,

동갑내기 외사촌 종구 형과 자정까지 민화투만 쳤다는데 아차, 달거리 끊긴 것이다 그믐날 자정 칡넝쿨에 돌멩이 매달고 뛰어내렸으니 내가 빌려준 날개 없는 천사받을 길도 막막하다 둔치로 휘날리는 대궁 보며 억새인가 갈대인가 헷갈리는 이유이다

―『격렬하고 비열하게, 작은숲,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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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강병철

 

고등어 한 손 자전거 짐받이에 매달자

희끗희끗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

갑자기 커지던 먼지 몇 점

차가운 기침으로 얼굴 때리더니

눈송이다 돌아가신 당숙

상여 메던 그 첫눈

짐 벗고 훌훌 떠나라는 그 말씀

자작나무 마파람 소리로 더듬다가

페달 구른다

목덜미 차갑게 얹히던

그 서린 기운이구나, 끄떡거리며

―『격렬하고 비열하게, 작은숲,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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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

 

강병철

 

고두리 바다 낚시질 가던 사내

조개잡이 열아홉 여인과

갯벌 외길 비켜서다 맨살 스쳤네

실오라기 안부도 나누지 못한

그 사내, 새도록 막걸리 사발에 담그고

그 아낙, 새도록 뜨개질에 빠지던

격렬비열도 은밀한 사연

심장박동 누를수록 빨갛게 사무치는

―『격렬하고 비열하게, 작은숲,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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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

 

강병철

 

저무는 토방 송홧가루 분분하더니

소꿉 밥상 더 풍성해졌다

썩은 이빨 펜치로 당기니

벌레 하나 쏙 빠져 시원해진 누이

오라비 이맛살 비비며

조가비에 올린 쇠비름 반찬

봄바람 채워지던 그 눈빛보다

더 훗훗한 사랑 없으니

그 남매 전생의 부부가 확실하다

벌어진 상처 흙먼지 채워

흐르던 피 멈췄다며

방싯방싯 흔들리는 옴팡집 햇살

―『격렬하고 비열하게, 작은숲,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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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1987년 『신동아』에 시 「믿음을 위하여」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여 40년 동안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강병철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격렬하고 비열하게(작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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