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신필영
다 읽은 편지 말미
아쉬워 쓴 추신 같은
글썽이다 멀어지는
그대 뒷모습인가
언제나
일방통행 길
길게 놓인 발자국
― 《좋은시조》 2025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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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는 전지구적인 비상사태라고 불릴만큼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지구의 평균 온도보다 2배 빠른 온도 변화를 겪고 있다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해마다 다양한 변화들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을 만들어내고 있어서 당혹스럽게 한다. 몇일 전 내린 눈도 이런 당혹스런 내용의 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4월 중순에 내린 눈이라니. 경칩에 나왔던 개구리가 화들짝 놀라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듯, 하얀 목련이 피다 말고 얼어 나풀대는 걸 신품종인가 오인했던 일도 지난해에는 목격하지 못했던 일 중의 하나이다.
때늦은 눈은 시인에게 편지 말미의 추신 같은 현상으로 읽히고 있다. 할 말 다 해놓고도 꼭 해야 할 말을 놓친 것처럼 “p.s.”라고 적고 별로 중요치도 않은 말들을 더 넣으며 이야기의 끝을 연장하고 싶었던 마음 같은, 그것이 봄눈의 정체였을 것이다.
봄눈은 겨울처럼 폭설로 내리는 건 아니다. 살짝 등성이만 가릴만큼의 양으로 왔다가 녹아버리는 특성이 있기에 “글썽이다 멀어지는/ 그대 뒷모습”처럼 표현함으로써 보내는 이의 애틋함을 잘 살려내고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봄은 봄대로의 반가움이 있지만 보내야 하는 겨울에 대한 아쉬움도 시인의 마음속에는 눈망울에 그득하게 글썽이는 어떤 것으로 고여올 수 있다. 숫눈 위의 발자국이 일방통행인 것처럼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늘 일방통행이었던 봄눈 같은 그녀를 소환시키게도 한다.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 좋은 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미디어 시in>
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 29 _ 신필영의 「봄눈」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 29 _ 신필영의 「봄눈」 - 미디어 시in
봄눈 신필영 다 읽은 편지 말미아쉬워 쓴 추신 같은 글썽이다 멀어지는 그대 뒷모습인가 언제나일방통행 길길게 놓인 발자국― 《좋은시조》 2025년 봄호. ----- 지구 온난화는 전지구적인 비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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