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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38 _ 박정호의 「돌의 시간―한재골에서」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6. 3. 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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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시간

한재골에서

 

박정호

 

나는 돌이라 구르고 굴러 뛰는 돌

펄쩍! 뛰다가 어처구니로 처박혀

영마루 넘지 못하고 잊혀진 숨결이다

 

구릉에 돌아앉아 다독이는 조각조각

팔매질한 어린 손아, 불구덩이나 꽃밭을 질러

은하수 건너다니는 떠돌이로 뒹구는 돌

 

천변만화 구름길에 된비알 너덜겅에

물이 끓는지 피가 끓는지 할 수 없이 데굴데굴

주름진 돌의 시간을 씻고 있다, 식히고 있다

 

박정호, 마음 한 평, 이미지북,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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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행로는 곧게 이어지지 않는다. 도약과 추락, 방황과 정지가 뒤섞이며 하나의 궤적을 그린다. 키르케고르는 삶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살아갈 때에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박정호 시인의 시 돌의 시간은 이러한 삶의 움직임을 사물의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이 작품은 이라는 단단한 사물을 주체로 내세워 시간의 퇴적을 드러낸다. “구르고 굴러 뛰는이라는 반복적 리듬은 단순한 물리적 움직임을 넘어 삶의 불안정한 발자취를 환기한다. 이어지는 펄쩍! 뛰다가 어처구니로 처박혀라는 시구에서 돌의 운동은 갑작스러운 추락으로 전환된다. “어처구니라는 단어는 돌을 다듬어 성벽을 쌓을 때 쓰이는 부재를 뜻하면서도 허탈한 상황을 가리키는 이중적 어감을 지닌다. 이러한 중의성은 돌이 겪는 운명의 아이러니를 부각시킨다. 영마루라는 높은 지점에 이르지 못한 채 멈춘 돌은 결국 기억되지 못한 존재로 머문다.

 

  세월의 자취 속에서 시선은 안쪽으로 향하며, 돌이 누군가의 손길 속에서 기억되는 사물임을 일깨운다. 특히 팔매질한 어린 손아라는 호명은 돌을 던졌던 과거의 장면을 불러온다. 아이의 장난처럼 던져진 돌은 불구덩이나 꽃밭을 질러/ 은하수 건너다니는 떠돌이가 된다. 이 대목에서 시의 공간은 구릉이라는 현실의 풍경에서 우주적 상상력으로 확장된다. 시는 작은 풍경과 거대한 세계 사이를 넘나들며 돌의 의미망을 넓혀 간다.

 

  이후 시선은 다시 자연의 풍경 속으로 돌아온다. “천변만화 구름길”, “된비알 너덜겅이라는 구절은 산과 물, 바람이 뒤엉킨 험준한 지형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서 돌은 물이 끓는지 피가 끓는지분간하기 어려운 격렬한 기운 속에 놓인다. 자연의 물과 인간의 피가 겹쳐지는 장면은 돌이 품은 내력이 단순한 지질학적 과정이 아니라 삶의 열기와 고통이 스며든 결과임을 보여준다. 마침내 데굴데굴굴러가며 주름진 돌의 시간을 씻고 있다, 식히고 있다”. “은 오랜 세월이 남긴 자국을 씻어내는 동시에 뜨거웠던 기운을 서서히 가라앉힌다. 이는 한 존재가 지나온 길을 되짚는 서사이자 자연 속에서 서서히 가라앉는 생의 기록이기도 하다. 결국 이 시가 남기는 것은 굴러온 시간의 무늬 위에 내려앉는 조용한 기척이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유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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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38 _ 박정호의 「돌의 시간―한재골에서」 - 미디어 시in

돌의 시간―한재골에서 박정호 나는 돌이라 구르고 굴러 뛰는 돌펄쩍! 뛰다가 어처구니로 처박혀영마루 넘지 못하고 잊혀진 숨결이다 구릉에 돌아앉아 다독이는 조각조각팔매질한 어린 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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