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린 기자
1985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2002년 《시와 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신덕룡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속이 뻔한 울증』을 파란시선으로 발간했다. 신덕룡은 그동안 시집 『소리의 감옥』 『아주 잠깐』 『아름다운 도둑』 『하멜서신』 『다섯 손가락이 남습니다』 『단월』 등을 썼고,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백호임제문학상 본상, 김준오시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지금까지 시인이 발간한 시집들을 살펴보면 편안하게 읽히면서 섬세하게 미학적 여운을 남기는 양상을 띠어왔다. 이번 시집 『속이 뻔한 울증』에서도 그 양상이 도드라지는데, 자연물이나 주변 존재들에게 대한 시선이 더욱 웅숭깊다. 그 깊음이 가닿는 자리엔 “유불선(儒佛仙)의 사유가 공존하면서” 특유의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시인은 어떤 사상적 체계와 규범적 기율을 숭상하는 수동적 관념의 주체로 살아”가지 않고, 오히려 “나날의 삶에 주어지는 무수한 사연과 다양한 곡절들 자체를”(이찬의 ‘해설’) 살뜰하게 들여다보고, 거기에 서려 있는 존재론적인 의미를 간파한다.
그것이 언어화되는 과정은 매우 섬세하고 부드럽다. 그가 시적 대상을 온몸으로 감각하고, 체험하고 사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농촌에 직접 거주하면서 화자를 둘러싼 세계를 면밀하게 살핀 후 각각의 존재들을 특별한 몸짓을 가진 타자로 격상시키는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공감과 실감을 동시에 갖게 한다.
“신덕룡 시인의 시에서는 화려한 이미지의 상승 운동이나 원대한 지향성의 좌절과 실패에서 기원하는 숭고 또는 비장의 미감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나날의 삶에 말없이 깃든 ‘숨은 조화’의 은은한 자존감과 담박한 아름다움이 드넓게 번져 흐르게 한다.”(이찬의 ‘해설’) 그러니 자극적인 시나 뻔한 이미지와 뻔한 사유로 자연물(대상)을 대하던, 감동 없는 시에 신물이 난 독자라면 『속이 뻔한 울증』이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더운 여름 시 읽기의 즐거움과 몸과 마음의 치유까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담배 한 대
신덕룡
논물 살피던 노인이 삽을 내려놓고 논둑에 쪼그려 않는다 어깨 위로 올라온 두 무릎이 개구리 떼울음 소리가 풀어 놓는 어스름을 말없이 쌓아 올린다 굽은 등허리엔 뒷산의 적막도 한 짐 얹혔다 더 무거워졌다 지난봄에 떠난 마나님이라도 다녀가는지 손끝에서 스러지는 불빛이 잠깐 웅크린 몸을 품어 주고 간다
한껏 빨아들여 홀쭉해진 볼
반짝했던 소실점이 흔적 없이 지워졌다
―『속이 뻔한 울증』, 파란,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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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산책
신덕룡
밥공기를 콧등으로라도 쐬고 와야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천천히 걸으며 듣고 맡는 풀벌레 소리와 들꽃 향기로 속이 환해진다 운이 좋아 별빛에 샤워라도 하는 날이면 온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과거가 말끔하게 씻긴 느낌이다 어떤 과거는 참으로 끈덕지다 기억의 주름들 사이 사이에 끼어 있다가 틈만 나면 비집고 나와 냄새를 피워 댄다 달갑잖은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와 얼굴을 붉히게도 하고 괜스레 치미는 울화에 몸을 떨게도 한다 좀처럼 갚기 힘든 빛이다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획, 날아가는 새처럼 도망치는 게 상책이지만 오늘밤
별빛 쏟아진다
밖에 나가 샤워를 할 시간이다
―『속이 뻔한 울증』, 파란,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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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안다
신덕룡
함박눈은 한쪽으로 몰아치는 법이 없다 지상의 모든 것 머리와 어깨에 골고루 내려 쌓인다 저마다 버텨야 할 무게가 다르듯 양지쪽으로만 뻗은 나뭇가지엔 더 넉넉하게 쌓인다 팽팽한 고요도 그 위에 함께 얹힌다 한밤중, 뒷산 비탈에 서서 이고 진 게 많아 끙끙 앓던 잣나무가 제 어깨를 찢었다 다급해진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내듯 단호하게 쩍!
잠시 움찔했던
어둠이 극적으로 깊다
―『속이 뻔한 울증』, 파란,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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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뭔가 있어
신덕룡
풀이 무성한
무성해서 물이 빠지지 않는
배수로에 길을 낸다 앉아서 호미로는 못 하고 엉덩이를 뒤로 배고 팽이로 찍어 댄다 파헤칠 때마다 깨진 벽돌과 빈 소주병 비닐 조각과 헌 슬리퍼, 반쯤 삭아 버린 과거가 드러난다 풀숲 안쪽 그늘에선 스르륵 뱀처럼 사라지는 기척도 있다 장화를 신은 발이 움찔, 뒤로 물러서는 건 내 안에도 들키지 말아야 할 게 있어서다 꿀꺽 삼켰던 울음이 딸꾹질로 올라오듯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주춤거릴 때 나는 영락없는 외부다 길은 멀고 군데군데 툭, 툭 끊겼다
―『속이 뻔한 울증』, 파란,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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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게 읽히면서도 섬세하게 미학적 여운을 남기는 시편들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1985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2002년 《시와 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신덕룡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속이 뻔한 울증』을 파란시선으로 발간했다. 신덕룡은 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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