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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삶의 가장 투명한 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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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6. 8. 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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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내일의 유리 예보, 타이피스트시인선으로 발간

 

 

하린 기자

 

  2003조선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천수호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내일의 유리 예보를 타이피스트시인선으로 발간했다. 천수호는 그동안 삶의 복잡한 결을 생생한 감각과 상상력으로 포착하고, 보이는 세계 너머 들리는 사물의 기척에 귀 기울이며, 병과 죽음, 이별과 애도의 장면 속에서 관계의 의미를 다시 물어왔다.

 

  시인은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는다. 그런데 그 손끝은 번번이 투명한 벽에 가닿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는 기억,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질문까지. 시인은 우리가 끝내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오래 응시한다. 그러나 내일의 유리 예보는 닿을 수 없음 앞에서 멈추는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끝내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다시 손을 내미는 마음.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세계의 표면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보려는 태도의 기록이다.

 

  『내일의 유리 예보에서 유리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세계 사이에 놓인 얇은 막이자,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것들의 경계이며, 이미 지나간 슬픔이 뒤늦게 손끝에 닿는 감각이다. 시인은 유리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인지하지만 끝내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오래 바라보고 감각을 멈추지 않는다. “손끝으로 더듬어 보면 유리/ 내일의 예보가 만져진다는 문장처럼, 이 시집에서 내일은 멀리서 오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더듬어지는 예감이기에, 내일의 유리 예보는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만져 보려는 마음에서 새어 나오는 가장 투명하고 서늘한 의지이다.

 

  아울러 천수호는 슬픔을 쉽게 위로로 봉합하지 않는다. 대신 슬픔이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바꾸어 놓는지를 보여 준다. 한 사람의 통증은 사물의 방향을 바꾸고, 한 사람의 침묵은 나무의 자세가 되며, 한 사람의 기억은 유리창에 남은 차가운 흔적이 되어 나타난다. 그런 현상들은 울음보다 울지 못함에, 말보다 말하지 못함에, 사건보다 사건 이후에 남은 감각에 더 오래 머물게 만든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믿고, 어떤 슬픔을 지나왔다고 생각하며, 내일을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천수호의 시는 되묻는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는 과연 얼마나 투명한가. 그리고 그 투명함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내일의 유리 예보는 그 질문을 오래 품게 만드는 시집이다. 닿을 수 없는 것들의 표면을 끝내 손끝으로 더듬는 시집, 깨지기 쉬우나 끝내 깨지지 않으려는 세계의 슬픔 앞에서 다시 손을 내미는 시집이다.

 

-

 

<시집 속 시 맛보기>

 

 

끝내 말해 주지 않고

 

천수호

 

나무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혼자 크게 웃는 소리에 깨는 꿈처럼

소리가 진짜인지 귀가 정말인지 알 수가 없지

 

전설 속 거인이 제 몸 다 불살라져도 심장만은 남기는 것처럼

그 심장이 호수 속에서 천 년을 팔딱거리는 것처럼

이 호수 변에 있는 세쿼이아는 천 년쯤 산 거 같아서

진짜 목소리도 내고 거짓 울음도 알아챈다고 해서

 

어떤 비겁한 연인은

사랑을 끌고 이 나무 아래에서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는데

 

나무가 목소리를 내는 건

두 사람의 거짓 언약을 부추기는 것과 같아서

누군가 곁을 서성이면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

 

하지 않는 말과 들을 수 없는 말을 사이에 두고

공원을 걷는 사람들

 

나무의 목소리를 기다리다가

의심을 키우는 것이 이승의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나무는 열 사람이 죽어도 끄떡도 않고

 

비밀도 결의도 잃어버리고 멀리서 찾아온 사람도 모르는 척하고

모른 척하는 것도 알게 하지 않고

 

그 사람이 찾는 것이 제 목소리라는 것도 끝내 말해 주지 않고

 

혼자 웃는 꿈 안에 그대로 서 있어서 영원히 깨지 못할 거 같기도 한데

 

사람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들으려고 나무에 귀를 대보기도 하고

나무는 사람의 심장을 두근거리게도 하고

―『내일의 유리 예보, 타이피스트, 2026.

 

-

 

망각과 지퍼

 

천수호

 

이별을 퍼붓는 발음은 눈발과 비슷하여

네 언어의 조각들이 전국적으로 눈을 몰고 왔다

 

여름으로 간 너는 겨울의 폭언을 알 수 없겠지만

이건 네가 몰고 온 폭설이어서

구석진 곳에 남아 있던 네 물건들처럼

기댈 건 기대고 무너진 건 엎어진 채로 쌓인다

 

눈의 정원은

어느 시인이 아직도 파고 있는 저수지보다 늙은 낙원이어서

숨겨져 있던 그 눈을 끌어모아 검은 머리띠의 사람을 만든다

 

흘러내리는 눈은 지퍼가 없고

눈은 원래 사람의 재료여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바람이 휘저어도

사람답게 서 있을 수 있다

 

눈을 가끔 맨홀 뚜껑처럼 생각하다가

날씨의 마개를 다 열어 놓고 떠난 네가

시도 때도 없이 띄워 주는 네이버의 예보처럼 처연하게

그곳의 해변을 거닐 때

 

나는 뚜껑 위에 소복한 눈을 끌어모아

네 육식의 피부를 단단히 뭉치며

너를 사람처럼 키워 나가고 있다

 

너는 키우는 대로만 뭉쳐지지 않아서

팔뚝은 팔뚝대로 종아리는 종아리대로

쓸데없는 부위들이 두꺼워질 때

 

멀리 있는 너는 더 멀어지고

가까이 있는 너는 몸통이 두 개로 나눠지더니

 

점점 눈송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일의 유리 예보, 타이피스트, 2026.

 

-

 

사월의 것을 그대로 두어요

 

천수호

 

절반으로 가를 줄 몰라서 산이라 했지요

그땐 그랬어요

 

가르고 나면 산이 아닌 줄도 모르면서

한 모금을 뱉고 한입 가득 머금으며 골짜기도 생각했죠

모를 때의 일이어요

 

긴 말이 필요 없던 때였어요

 

오래 충격을 받은 자리에만

생강나무꽃이 터진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래서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을 끝까지 잡지 못했어요

당신 몸에서 생강 냄새 나는 꽃이 터질까 봐요

 

꽃이 얹히면 다 내 것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나도 모르는 말을 할 때는

산을 가를 생각은 꿈에도 없었어요

 

피를 흘리는 것은 이미 뒤늦은 사태라는 것을

꽃이 피기 전에는 몰랐거든요

 

세상 비겁한 일이

아플 때 놓는 일인 것을 알지 못해서

역병을 밟아 삭정이가 되어 버린 가지를 헤치며

얇은 꽃잎 하나 붙어 있지 않는 두어 마디 말로 이별 인사를 했지요

 

오늘 떠났지만 오래전에 보낸 사람이라 해두어요

 

꽃은 내려 두고 잎만 단 채 하늘을 꺾은 가지 때문에

핏물이 고여서 이름이 된 사월이 있었다는 걸 겨우 알게 되겠지요

 

반반 잘 나누려고 구름이 한 번 치고 가는 산을

내가 어찌 사월의 것이라 말할 수 있겠어요

―『내일의 유리 예보, 타이피스트,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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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천수호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내일의 유리 예보』를 타이피스트시인선으로 발간했다. 천수호는 그동안 삶의 복잡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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