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린 기자
김휼 시인이 세 번째 신작 시집 『받아요, 한 다발의 침묵』을 문학들시인선으로 펴냈다. 시인은 오랫동안 거닐었던 담양의 시간을 54편의 시로 담아냈다. 면앙정, 식영정, 송강정 등 유적은 물론, 대치 대장간, 강의리 빈집, 고서 포도밭 등 삶의 현장까지 아우르며, 섬세한 눈길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예를 들어, 담양읍 남산리 관방제림의 나무들은 그에게 “어깨를 겯듯 뿌리를 맞잡고 휘어지는 날들은 강물처럼 흘러갔다//한 평 그늘을 늘리는 데 푸른 생을 바친 노병들”(「그늘 수호기」).)이 되고, 경상리 느티나무는 “시름이 지나가는 길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보니/나도 모르는 사이 신이”(「신과 나무 사이에」) 된다.
김휼 시인은 ‘목사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목사와 시인은 공통점인 스스로 구도자로서 본질을 탐구하고 궁극을 염원하는 점에서 같다. 그런 면모를 『받아요, 한 다발의 침묵』에서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하늘과 땅, 음지와 양지, 성과 속을 말할 때 정답을 말하지 않고, 이미지나 비유로 암시한다. 그의 시가 가진 매력이 여기에서 근원한다.
김휼의 시가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드러내 대상이 가진 안쪽과 너머를 재인식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일상을 바탕으로 일상을 뛰어넘는 ‘경지’에 그가 도달해 있는 셈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의 일상은 온통 담양과 관련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는 담양의 익숙한 제 요소들을 재감각하고, 재해석하면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이루어냈다. 그 감각과 해석이 닿은 지점에서 담양은 다양한 색채와 문채(文彩)를 갖게 되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담양 속 사물과 현상이 되살아난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폭포의 탄생
김휼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세요
사실, 폭포는 아닌 장엄한 저 폭포를 보세요
흐르기 싫어서 뽀글뽀글 놀고 있는 물방울을 불러모아
낭만적인 투신을 부추기는 허구적인 맹렬을 보세요
흐르는 물에도 신념이란 게 있어요
곧은 길에선 직진의 기상으로, 곡선의 지형에선 숭고한 이념으로
제 몸 휘돌려 산하를 품고, 가는 길 멈추지 않는 물의 정신, 강직한 뼈대를 세우기까지 흐른다는 건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요
아버지의 걸음이 굽이도는 동안 어머니는 한 때 폭포수를 쏟아냈죠
빈약한 가슴에 그토록 많은 물을 어찌 가두고 살았는지
가파른 벼랑을 숨긴 가슴에서 흐르던 물줄기가 종종 내 등짝을 후려치곤 해요
직진의 힘을 믿고 달렸지만 무엇이 되지 못한 내가
용마루길 인공폭포 아래 서 있습니다
폭포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물의 최대화
절경을 배후 삼아 승리의 포즈로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요
나는 이 허구적인 폭포의 탄생을 보며
누군가 스위치를 끄고 돌아설 때 맞게 될
폭포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도 잠깐,
폭포가 아닌 폭포 아래서 폭포를 꿈꾸고 있습니다
―『받아요, 한 다발의 침묵』, 문학들, 2026.
-
부드러운 개입
-관방제림*을 거닐며
김휼
푸른 피로 살아가는 나무는
뿌리와 가지가 다른 복음을 지니고 있어
땅속과 하늘 위로 각기 뻗어나간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뿌리는 고요의 노선을 달리고
높은 곳을 선호하는 가지는 진보의 노선을 달리고
접점이 어긋난 그들이 성과 속의 경합을 벌일 때마다
가지 끝에 매달린 통증이 펄럭였다
뿌리와 가지의 신념이 충돌한 흔적으로 남은
어지러운 나이테
죽은 뒤에야 그의 중심을 읽을 수 있는 건 다행일까 불행일까
한 몸으로 하늘과 땅을 살아내는 나무들
그 빛나는 그늘에 앉아
뿌리의 힘으로 공중을 뻗어가는 가지를 보며 생각한다
몸 안팎을 오가는 잎사귀는
경직된 두 노선 사이 부드러운 개입일 거라고,
*담양읍 남산리에 있는 수해 방지 방제림 천연기념물 제366호.
―『받아요, 한 다발의 침묵』, 문학들, 2026.
-
하마르티아*
김휼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갖고 있다
흰 실과 검은 실의 구별이 어려운 시간이 되면
손을 모으는 버릇이 있다
둥근 그 품 안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빗나갈 때가 많았어요 악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판단의 착오일 때가 많았죠 얼마의 눈물이 있어야 내 얼룩을 지울 수 있을까요, 금단의 사과를 훔쳐먹기 위해 헤매던 밤의 날들을
주제넘은 몰두는 일을 그르쳤고
가속이 붙은 죄의 힘은 돌아갈 길을 멀게 했다
반복되는 죄가 있어 토한 걸 즐겨 먹는 개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살랑이는 악의 꼬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지 못해 수전증을 앓기도 했습니다 빗나가도 다시 쏘는 힘으로 일어서는 관성, 방향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무위정**에 모여 활을 쏜다
당신이라는 과녁을 향한 궁수들의 몰입
손끝에 불꽃이 튄다
* ‘과녁에서 빗나가다’라는 뜻으로 죄를 의미하기도 하고 비극에서 주인공을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주인공 자신의 선천적인 결함이나 성격을 나타내기도 하는 헬라어.
** 담양 관방천에 있는 국궁장
―『받아요, 한 다발의 침묵』, 문학들, 2026.
담양의 숨결과 뭇 생명들의 노래가 가득 찬 서정시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담양의 숨결과 뭇 생명들의 노래가 가득 찬 서정시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김휼 시인이 세 번째 신작 시집 『받아요, 한 다발의 침묵』을 문학들시인선으로 펴냈다. 시인은 오랫동안 거닐었던 담양의 시간을 54편의 시로 담아냈다. 면앙정, 식영정, 송강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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